– <소돔의 120일>을 보고 난 뒤, 불쾌함과 쾌락에 대하여
“예술은 뭐든지 해도 돼?”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일>을 본 후, 이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고 조롱하며 끝없는 고통을 소비하게 만든다. 수많은 범죄들이 벌어지고, 그 모든 장면을 ‘사회 풍자’ 혹은 ‘정치적 메시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나는 단순히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역겹고, 불쾌하고, 이걸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더 역겹다.
물론 예술이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감상자마다 해석이 다르고, 누군가에겐 작품이지만 누군가에겐 쓰레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허용되어야 할 순 없다. 누군가를 해치는 행위, 명백한 폭력, 타인의 고통을 ‘상징’이라며 소비하는 것이 정말 예술일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건 예술인가? 아니면 그럴듯한 포장을 입힌 고문 영상인가?” “내가 이걸 끝까지 봐야만 할 의미가 있는가?”
영화는 사디즘과 권력, 인간의 쾌락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정말 인간은 남을 해치며 쾌락을 느끼는 존재일까? 아니면 단지 ‘금지된 것’을 넘을 때 오는 쾌감에 중독된 존재일까?
나는 후자라고 믿는다.
금기된 것은 더 궁금해진다. 나조차도 이 영화가 과거에 ‘금서’처럼 취급되었기에 더 보고 싶었고, 마침내 영화를 찾았을 땐 거기서 오는 일종의 쾌감도 느꼈다.
다만, 그건 ‘악한 장면’ 자체에서 오는 자극이 아닌 ‘금기를 깼다’는 감각에서 오는 도파민이다. 마치 미성년자가 술을 몰래 마실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술의 맛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걸 내가 하고 있다”는 스릴.
쾌락은 그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더 강해진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자. 만약 이 세상이 악한 행동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라면? 즉, 선한 행동이 금기가 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오히려 ‘선을 행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몰래 누군가를 도와주고, 조용히 배려하며, 그 어떤 폭력도 가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마치 우리는 금기를 어긴 것처럼 내면의 스릴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악’에서 쾌락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금기를 넘었을 때의 자유’를 쾌락으로 경험하는 존재가 아닐까.
<살로>가 말하고자 한 바는 어쩌면 이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쾌락이 얼마나 쉽게 비틀어질 수 있는가. 금기의 기준이 어디에 세워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변질될 수 있는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반문하고 싶다. 그 질문을 꼭 이런 방식으로 던져야 했을까? 예술이라면, 무엇이든 허용되어야 하는 걸까?
내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요”다.
예술은 자유로운 영역이지만, 윤리와 책임을 벗어난 예술은 단지 폭력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감상자에게도 ‘판별할 눈’과 ‘거절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야기해야 할 때다.
예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자유도, 우리에게는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