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으면 염치도 없어야 할까?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 못한 미소에게 (feat. 영화 소공녀)

by 이빛소금

여행을 다녀와 출국 후 적어두었던 글을 꺼내 본다. 당시 나는 월세 보증금을 빼서 여행을 떠났고, 여행의 끝은 무릎 통증과 함께 비행깃값을 빌려 간신히 한국에 돌아온 직후였다. 약 8개월 만의 귀국이었다. 영화 소공녀를 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그때의 내 상황과 너무 닮아 있어, 유난히 서글펐던 기록이다.


극 중 주인공 미소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다. 매일 밤 하루의 지출을 적는다. 약값, 식비, 집세, 담배, 위스키. 다른 건 몰라도 담배와 위스키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새해가 되자 집주인은 집세를 올리고, 미소는 방을 빼 짐을 싸서 대학 시절 밴드 친구들의 집을 전전한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다. 슬픈데 웃기고, 웃긴데 슬프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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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지?”


그런데, 내가 그랬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에게서 지독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작년에 출국했다. 월셋집을 빼 보증금으로 여행을 했다. 돈을 다 쓰고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몸이 아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비행깃값을 빌려 한국에 돌아왔다. 집이 없던 나는 아는 이의 집에 머물기로 했다.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돈이 없으니 머무는 대가로 내가 차린 회사 홍보를 도와라. 월급은 줄 수 없고.”


홍보를 돕는데 월급을 받지 못하면, 다음 달부터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그 제안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고민하다가, 다행히 다른 머물 곳을 구했지만 미소와 나의 처지는 꽤 닮아 있었다. 결국, 다시 돈 이야기로 돌아온다. 돈이 없으면 염치가 없어진다. 돈이 없으면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렵고, 나도 모르게 염치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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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한 친구는 말한다. 돈이 없으면 담배도 끊고 위스키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과연 그 말이 맞을까?

돈이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마저 포기하며 살아야 할까? 나 역시 이성은 말한다. “이 커피는 마시면 안 돼.”

하지만 결국 본능을 참지 못하고 사 마신다. 그리고 또 후회한다. 끝없는 악순환이다.


약마저 포기한 미소는 결국 백발이 된다. 영화 속 친구들은 각자의 현실—감옥 같은 아파트, 시댁과의 갈등—에 갇혀 산다. 이 많은 친구들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돈이 뭘까. 왜 생각 없이 그 돈을 다 써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내가 선택한 일이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성과, 끝없이 더 원하게 되는 욕망 사이의 갈등. 소공녀는 나와 우리의 현실을 투영한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돈이 없어 친구들 집을 전전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을 지키는 삶일까, 아니면 모두 내려놓고 스탠더드한 삶을 선택하는 게 맞을까. 그 답은 영화를 보는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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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이 고민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미소는 텐트 속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만의 방을 찾아가려 한다. 커피 한 잔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글을 써서 내 힘으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꿈을 꾼다. 분명히, 꾸준히 쓰다 보면 이뤄질 거라 믿는다. 당신은 ‘나만의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끝까지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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