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우울증이라는 것이 사람을 무너뜨리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선 최고의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능력을 다 펼쳐보기도 전에 고꾸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면 얼마나 허탈하던지.
쫓아내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나의 검은 개는 너무 충성스러워 내 옆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는가 보다.
제발 가라고 애원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곁에 붙어서 헌신적으로 나를 지킨다.
우울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불균형, 신체적인 영양 부족, 살면서 겪는 트라우마, 어린 시절 학대, 유전적 대물림, 사회 구조적 문제.
모든 것이 내 우울증의 원인이었고 어떤 것도 내 우울증의 원인일 수 없었다.
약을 먹는다는 것은 내게 나의 마음에, 뇌에 “모든 것을 잊고 지금에만 집중하라고 지금 달리기 경주가 있다”고 소리치며 내 목덜미를 잡아 달리기 트랙 위로 올려놓는 코치와 같았다.
일단 달려라. 달리다 보면 좋아지는 날이 온다.
그때까진 내 말을 믿고 너의 고민, 잡념, 고통은 잠시 미뤄둔 채 지금 이 경주를 마치는 것에만 집중해라.
약은 우울증에 정말 필요한 코치이다.
침대에 파묻혀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입맛 없는 내게 숟가락을 쥐어주고
냄새나고 더러운 나를 씻기고 옷 입혀 밖으로 내보내는 것까지 하게 만들어주니까.
하지만 달리기 경주는 뛰는 건 실제의 나다.
코치는 도와주고 격려해 줄 수 있을 뿐 나 대신 뛰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산적해 있는 문제들을 마주하는 것은 나이고, 그걸 해결해야 하는 것도 나이다.
.
.
.
그래서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언제 나의 검은 개가 찾아오는지
왜 나의 검은 개가 떠나지 않는지
나의 경우에는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나의 검은 개는 찾아와 원래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알려준다.
내가 해결할 수 없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날 때,
나의 검은 개는 찾아와 이 일들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길로 가고 있을 때,
나의 검은 개는 찾아와 내가 원하는 길은 그 길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얼마나 충성스럽고 똑똑한지 나보다 내 마음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나의 검은 개.
이제는 안다.
이 우울이 오면,
내가 나를 한 번 돌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을.
내 삶의 중요한 가치는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이제는 내 우울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