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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감자 Apr 29. 2023

봄 사격, 벚꽃 말고

나는 서울에서 군생활을 했다. 남산과 경복궁이 보이는 곳이지만 함부로 소초 밖을 나갈 수 없는 처지는 다른 군인과 마찬가지다. 부대 본부에 있는 훈련장에 가는 게 소초 밖으로 나갈 드문 기회였다. 날씨가 풀리자 부대는 미뤄왔던 훈련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는 생각에 사격 훈련이 기다려졌다.


부대 봉고 트럭에 7명이 끼어 앉았다. 입고 있는 방탄조끼와 헬멧 때문에 평소보다 비좁은 내부였다. 시트가 터진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선생님을 따라 한 줄로 걸어가는 유치원생, 커플티를 입고 등산 데이트 온 커플, 손님으로 가득 찬 루프탑 카페, 알록달록 등산복의 산악회 아저씨들. 전투복이 아닌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 리프레시되는 기분이었다. 담장 하나 넘었다고 공기가 이렇게 달콤할 줄이야. 바닥에 놓인 의류대에서 K2C1 소총 6정이 달그락거린다. 운전석에 앉은 간부 눈치를 보다 오른쪽 창문을 눈높이까지 내렸다.  군용차 특유의 찌든 기름내와 전투화 냄새를 밀어내고 봄바람이 트럭 안을 휘저었다.

K2C1 소총 (출처: https://namu.wiki/w/K2%20%EC%86%8C%EC%B4%9D)

이번 사격은 상병 진급이 걸린 사격이다. 불합격하면 재평가를 보거나 진급을 한 달 늦게 하게 된다. 후임이 나보다 먼저 진급하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말아야 한다. 재미있기만 하던 사격이었는데, 오늘따라 전투 장갑에 땀이 많이 찼다. 남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사로에서 스스로를 저격수라 생각한다. 다리를 넓게 벌려 발 안쪽을 바닥에 밀착한다. 팔꿈치로 상체를 받친다. 쇄골 아래 가슴에 개머리판을 대고 눈과 표적 사이에 조준점을 올린다. 숨을 크게 마셨다 조금씩 뱉으며 배와 가슴에 적당한 압력을 만든다.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조준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표적이 살짝 흐려지고, 조준점이 선명해지는 순간 조준이 완성된다. 


오랜만에 입은 방탄복이 거슬린다. 두꺼운 어깨 부분은 총을 몸에 붙이기 어렵게 하고, 목 뒤쪽 깃은 엎드려있는 나의 방탄 헬멧을 건드린다. 방탄복은 나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방탄복 깃을 몸 안쪽으로 접어 넣어 입기도, 오른쪽 어깨 부분을 뜯어서 열고 다니기도 했다. 이런 꼴을 보고 있으니 전쟁이 나면, 쿠팡에서 새로운 방탄복을 사서 입어야겠다 생각했다. 방탄복 디자인이 처참했지만, 나는 사격에 합격해야만 한다. 

이런 작은 일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조종간 단발!"

"준비된 사로부터 사격 개시!"


총구가 흔들리지 않도록 검지 손가락 힘으로만 방아쇠를 당긴다. 당길수록 팽팽해지는 활시위처럼 방아쇠도 누룰수록 압력이 느껴진다. 최고점을 찍은 직후 떨어지는 롤러코스터같이 스프링 저항이 최고점에 이른 뒤 탄이 발사된다.


-탕-


사격장 밖에서 듣는 총성은 매우 크다. 훈련소에서 처음 총성을 들었을 때 나는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귀를 때리는 강렬한 폭발음과 낮게 깔리는 메아리는 공사장 천공기와 비슷하면서 다른 소리를 낸다.

그래도 귀마개를 잘 착용하면 귀가 아플 정도는 아니다. 사실 사격에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표적에 온 신경이 가있기 때문에 나의 총성도, 다른 사람의 총성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는다. 어깨가 느끼는 반동은 야구공을 글러브로 받는 느낌이다. 가볍지는 않지만, 온몸이 밀려날 정도로 묵직하지도 않다. 


정말 총을 쐈다는 걸 알게 해 주는 건 반동도, 총성도 아니다. 바로 냄새다. 총성과 함께 생일 케이크에 들어간 폭죽 열 개가 코 앞에서 터진듯한 냄새가 난다. 야외 사격은 그 냄새가 짧은 시간에 날아가지만, 내가 들어간 실내 사격장은 환기가 부족해 주변 사로의 냄새까지 진동한다. 코로나 때문에 쓰고 있는 마스크에 화약냄새가 배었다. 다음 표적을 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으며 알싸하고 퀴퀴한 화약 냄새를 들이마신다.

실내 사격 표적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영점 사격도 한 번에 통과했고, 평가 사격에서 30발 중 29발을 맞췄다. 당당한 표정으로 소초에 복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운이 좋았다. 배차가 꼬여 우리를 복귀시킬 차량이 30분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사격 내내 까칠하게 굴던 중대장은 긴장이 풀렸는지 남은 시간 동안 PX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본부 PX는 웬만한 편의점보다 규모가 큰 곳이다. 내 소초는 너무 작은 곳이라 PX가 중학교 매점보다 작았다. 훈련장에서 만난 동기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료수와 과자, 냉동 치킨을 장바구니 가득 담았다. 복귀 차량 트렁크에 방탄조끼와 PX에서 산 물건을 싣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역대 최고 사격 결과, 오랜만에 만난 동기, 봉투 가득 담긴 간식, 트럭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봄 향기. 모든 것이 달콤하고 완벽한 하루였다. 복귀하는 길이 막혀도 좋으니 바깥공기를 더 쐬고 싶었다. 노을이 질 무렵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경치는 아름다웠다. 입대 전 까진 아무렇지 않게 이 거리를 걸어 다녔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나의 일상이었던 공간에 가까이 간 것 만으로 충분한 위로였다.


“봄이라고 신났네”


운전대를 잡은 수송 간부가 장난스레 중얼거렸다. 차선 맞은편으로 하얀 오픈카가 지나갔다. 내 또래쯤 돼 보이는 세 명이 타고 있었다. 스쳐 가는 짧은 순간이지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화사하고 행복해 보였다.

방탄복에 짓눌려 땀범벅이 된 전투복, 방탄헬멧에 떡진 머리. 다리 사이에 끼워 놓은 소총에서 타다 만 화약 냄새가 스멀 올라온다. 메스꺼웠다.


백미러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사격에 합격했다.

트렁크에서 간식을 넣은 봉투가 흔들렸다. 

땀 냄새와 탄매 냄새가 가득한 수송 차량에 봄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계속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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