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여행 같은 소리 하고 있네

4년 연애의 종지부

by 채담이

한 사람과 연애를 4년이나 했다. 내 연애사 중에서 가장 긴 연애였다. 보통은 1~2년 정도 만난 후에 헤어졌는데. 이 사람과의 연애는 4년이나 지속됐다. 어쩌면 여느 연애 때와 똑같이 1~2년 만났을 때 마음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이라는 게 상대를 놓을 수 없게 만든 것 같다.


상대방 또한 처음과 달라진 부분이 많았고, 이 사람을 이대로 믿고 만나도 될까? 의문이 끊임없이 생겨났다.

- 내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이 사람을 계속 만나다가 이러다가 결혼을 하게 되는 걸까?

- 이 사람과 평생 함께 살 수 있을까?

- 지난 4년 동안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냥 만나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스스로를 향한 자책과 원망과 온갖 감정이 뒤섞였다. 그러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결단을 내렸다.



"나 다시 서울 갈 거야."

나는 헤어지자는 말 대신 다시 서울로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너 서울 가면 다신 못 돌아와. 이 집에 발도 못 붙일 줄 알아."

상대방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짐을 싸고, 주변을 하나둘 정리했다.

언제는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서 같이 지내자며,

월세 안 내도 되니까 옆에만 있어달라며,

좋아하는 책 읽기랑 글쓰기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며,

좋아하는 연극을 못 보여줘서 좀 그렇다며..

다 네가 했던 말들이었잖아. 근데 왜....


상대방한테 하지 않고 삼켜낸 말들이 쌓여갔다. 내가 상대방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상대방이 쏟아내는 감정적인 말들이 맞아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내 말이 맞아서 아무 말 못 하는 거 아니야?"라는 물음이 종종 찾아왔다.

이 질문에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나는 더 이상 이 사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

말해봤자 듣지 않는, 벽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싫어서 그저 함구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은 '여름휴가 가기로 했던 거 네가 식비랑 기름값 내.'였다.

이것도 머지않아서 '나랑 같이 가고 싶다는 사람 있으니까 네가 굳이 안 가도 돼.'라고 하여 별말 안 했는데.

내가 짐을 다 싸들고 나온 후에 톡으로 온 연락은 똑같이 여름휴가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후에는 내가 서울로 다시 간다고 했을 때 자기 기분이 어땠을 줄 아냐는 감정 쏟아내기가 전부였다.


"이별 여행 그런 거 왜 가는지 모르겠는데. 너랑은 여행 가기로 했으니까 뭐. 이별 여행으로 다녀오지 뭐."

상대방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들이 싫었다.

이 사람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고, 어떻게 보는 걸까.

여름이고 수영을 하고 싶으니 수영장이 있는 비싼 숙소를 가고 싶다고 한 것도 너고,

나는 수영을 아예 못하고 물을 무서워하는데도 네가 하고 싶다고 하면 따라가야 하는 걸까.

식비를 내가 내라고 하는 건 또 뭘까. 나보다 네가 먹는 양이 훨씬 많은데 참.

그전에도 이런 불공정한 거래는 몇 번 있었으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4년이라는 시간을 통으로 잘라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리하는 건 힘들지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미련이 남지도 않았고,

본인 기분만 말하는 감정 쏟아내기 톡을 읽다가 차단해 버렸다. 진짜, 정말, 끝, 그만.


오히려 이렇게 해버리길 잘했다는 해방감과 후련함만 남았다.

나를 갉아먹고,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들아 안녕. 마지막 인사를 보낼게.

부디 두 번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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