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지닌 얼음 한 조각

<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열린책들

by 정다

나는 기억한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뛰어가던 사람들의 검은 뒤통수를. 마스크 입고 시간에 맞추어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던 행렬을. 마스크를 착용하고 모이지 말라고 했지만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모일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시절이었다. 확진자가 나오면 소독을 하고 그 공간을 하루동안 비웠다. 병원도 마트도 식당도 어린이집도 수시로 닫았다.


회사는 급히 재택근무를 도입했다. 임산부 우선 실시. 나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은 아이랑 뱃속에 있는 아이랑 집에 있게 되었다. 오전 9시 정각에 메신저 로그인을 하고 아이 곁에서 머물렀다. 그때 재택근무 기능이라곤 메신저뿐이었다.


나는 기억한다. 홀로 앉아있던 산부인과 대기실을. 모두가 혼자인 붐비는 진료 대기실이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경계하며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둘째 아이 출산은 수술 예정일보다 일주일 먼저 진통이 시작됐다. 병원의 방침은 보호자 한 명 상주, 교대 불가였다. 30분 뒤 응급수술이 잡혔고 몸조리를 해주시기로 한 시어머니가 도착하려면 4시간이나 남았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만 남기고 남편과 첫째 아이는 집으로 갔다. 의료진은 내 몸을 흔들어 깨웠다.

"보호자분 어디 가셨어요?"

"아기는요?"

"아기는 건강해요. 근데 보호자분 어디 가셨어요?"

"첫째 아이가 어려서 집에 갔어요. 시어머니가 오 실 텐데요. 좀 걸릴 거예요."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이 한 군데도 없어요? 이웃이라던가요."


정말로 없었다. 그러곤 곧장 되묻고 싶었다. 당신에게는 주변에 어린아이를 맡길 만한 이웃이 있는 거냐고. 요즘은 공공장소도 조심스레 다니지 않느냐고. 보호자도 없는 산모인 나는 군말이나 늘어놓을 처지가 못되었다. 입을 다물었다.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녀의 손길은 세심했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오가며 출혈이 있는지 통증은 어떤지 살펴주었다. 하반신 마취가 풀리며 발끝이 찌릿했고 허벅지 엉덩이는 묵직하게 저렸다. 휑뎅그런 분만실의 밤은 한없이 길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한기에 떨었다. 지금도 내 몸 뒤판에 한기가 스민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그해 봄의 불확실성>에서 기억한다. 활기 없는 거리들에서 얻은 기묘한 즐거움을. 센트럴 파트를 독차지하던 자유를. 그 뒤에 따라오는 죄책감과 마음속 암류처럼 흐르던 슬픔을 환기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 같다. 그의 그림에 담긴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고립되고 약한 모습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무슨 슬픈 일을 당한 모양이야,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 시절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보호자 없는 분만실에서, 호퍼의 그림 속 인물이 되어 고독했다. 누네즈는 말했다. 어떤 일은 그저 기억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이따금씩 그 시절을 애도하며 산다.

월요일 연재
이전 14화활자 압축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