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나라면, 내가 글을 쓸 줄 안다면,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 책을 쓰겠다."_<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쿰쿰한 종이 냄새나고 맥주 거품 같은 이야기.
그럼에도 삼십오 년 간 폐지를 압축해 온 사람이 궁금해진다. 호기심 아래로 깊이 경외감이 깔린다. 그게 무슨 일이든(범죄 제외) 밥벌이를 해 온 일이라면 일단 숙연해진다. 타인으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당사자조차 표현할 수도 없는 숱한 날이 있었겠지.
한탸처럼 미영도 삼십오 년간 한 직장에 근무를 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길렀다. 남편이 먼저 은퇴했고 미영이 나중이었다. 미영은 2년 간 내 첫 팀장이었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내 결혼식에 와서 축하해 주었다. 이후에 다른 부서에서 일하면서도 내가 두 아이를 출산할 때마다 내복을 건네주었다. 건강하라고 말하면서 손에 힘을 주어 꼭 잡았다. 미영은 느슨하게 온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미영이 은퇴하기 직전에 누군가 내 귀에 속삭였다. 정책보고서에 대한 피드백이라곤 띄어쓰기가 전부라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적을 두기 마련이다" 한탸의 말처럼 미영의 적은 띄어쓰기였을까. 직장생활에서 사람과 일을 분리시키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직장에서 업무가 나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직장인의 비릿한 비애다.
미영은 은퇴 축하 파티에서 다행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무탈하게 마지막 날까지 출근해서 다행이라고. 크게 아프지 않고 중대한 업무적인 실수 없이 마무리해서 다행이라고. 나는 시간의 무게에 아득해져 안도감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내 직장생활 10년 동안 미영은 내게 일렁이는 촛불처럼 은은하게 따스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이라고 적힌 레터링 케이크를 나눠 먹을 때 미영은 도시락을 꺼냈다. 찐 야채들 - 브로콜리, 단호박, 파프리카-가 담겨있었다. 병원에서 바깥 음식을 많이 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삼십오 년 간 활자를 압축해 온 미영의 고독은 비로소 고요해졌을까. 싱거운 브로콜리를 씹는 미영에게 평온한 침묵이 느껴졌다. 더는 낱말과 낱말 사이가 아닌 광활한 시간의 여백 속에서 건강한 나날을 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