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저지대>, 마음산책
오래 살고 볼일이다. 앞머리에 돋아난 새치 서너가닥 뽑으면서 이런 생각하기는 이르지만. 엄마 옆에 착 달라붙은 온이. 집에서나 밖에서나 온이를 쫓는 엄마의 눈길. 엄마가 낯설다.
한 달 전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나와 달리 온이는 하염없이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생활의 리듬이 비슷한 엄마에게 온이를 보냈다. 주말에 온이에게 영상통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한밤중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온이 노느라 바쁘다. 다행이다 싶으면서 서운했다.
명절 연휴에 만난 온이는 도톰한 기모 상하복을 입고 있었다. 사이즈가 넉넉해서 내년까지 입을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대뜸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입고 온 옷이 너무 얇아서 새로 샀다. 속옷이랑 양말은 작아졌길래 그것도 새로 샀다. 네가 겨울에 바빴던 모양이구나.> 겨울의 시작 무렵 온이가 팔목이 드러난 패딩을 입고 등교하는 걸 보고 급히 패딩 하나를 주문한 기억만 났다.
<엄마, 할머니가 북극에서 입을 옷들을 사줬어. 이것 봐봐.> 온이는 옷장 서랍을 열었다. 예전에는 내 옷장이었던 그 서랍이다. 그저 엄마의 딸이기만 하던 시절에는 엄마에게 더 받을 것이 있는데 하는 마음을 품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서는 지독하게 엄마를 미워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서랍 속에는 단정하게 정리된 속옷과 상하복이 놓여있었다. 나도 엄마에게 받았던 것들이다. 당연하기만 했던 것들. 정작 내가 엄마가 되어 챙기려니 버거운 일이었다. 자라는 아이를 탓할 수 없어서 괜히 사계절을 탓하곤 했다. 계절은 왜 네 개나 되는 거야.
옷장 옆 책장에는 온이가 챙겨 온 이야기 책과 문제집이 꽂혀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공기가 다르다. 내가 이 방에 살 때는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딱 온이만 할 때 나는 IMF 키즈가 되었다. 집에서 도라지 껍질 까기를 시작으로 엄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점점 멀리 있는 직장을 구했다. 이른 아침에 나가서 늦게 돌아오기. 같이 있는 시간은 짧아졌고 말은 독해졌다. 싸늘한 눈초리와 무거운 한숨까지. 내가 엄마한테 받아야 할 것들은 관심과 다정함이었다.
언젠가 엄마가 그랬다. <너를 그렇게 힘들게 키웠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더라.> 엄마가 준 상처 때문에 나도 힘들었어요,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엄마는 모르죠, 키웠다기보다는 시간이 흐른 게 아닐까요. 여러 가지 대답을 생각해 봤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어져 <알아요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도 내게 받을 게 있었던 걸까.
엄마랑 온이는 목욕바구니를 챙겼다. 둘은 벌써 현관에 서서 나를 부른다. 챙겨서 나와보니 둘은 이미 나갔다. 이럴 거면 둘이 가지 중얼거리며 뒤를 따른다. 어릴 때 엄마 냄새 킁킁거리며 부드러운 살에 달라붙으면 엄마는 덥다며 나를 떼어냈다. 앞에 가는 엄마는 온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 포개져 걷고 있다. 앞서 가는 엄마는 다른 엄마인가. 온이를 키우면서 엄마처럼 살지 말자는 다짐을 숱하게 했다. 무심하고 차가운 엄마. 그 엄마는 어디로 갔나.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에는 벨라, 엄마에게 버려진 딸이 나온다. 강렬한 인물이 많은 작품이지만 나는 벨라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벨라의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탄생을 위해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벨라의 삶의 모든 게 엄마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나는 나다, 벨라는 중얼거리곤 한다. 나는 내 방식으로 산다, 엄마 때문에."
목욕탕에서 흰 머리카락이 더 많아지고 노쇠한 엄마의 몸을 봤다. 작고 늙은 여인. 나를 키우고 나의 딸을 품어주고 있는 모성. 온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정함을 체화했다. 기억 속에 차가운 엄마는 힘을 잃었다. 그저 나는 나다, 내 방식대로 충실히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