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책가방을 보며 떠오른 단상
아내가 복직했다. 1년간 아내는 육아휴직을 하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었다. 그러나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아내도 복직을 했다. 아내의 직장은 집에서 멀다. 그리고 아이들의 등굣길은 횡단보도가 많아 험난하다. 그래서 아내는 나에게 아이들의 등교를 맡겼다. 다행히 나는 코로나로 인해 현재 재택근무 중이라 아침에 아이들과 등교 정도는 할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은 여전히 아이들의 책가방이 무겁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사물함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매일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매번 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 게다가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바로 학원까지 가는 통에 학원 교재까지 함께 챙겨야 한다. 마치 돌덩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느껴지는 책가방을 130cm가 안 되는 작은 체구로 힘겹게 지고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책가방을 대신 들어 주지는 않았다. 물론 함께 등교를 하는 학부모 중에는 아이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이도 있다. 내가 그 가방을 들어주면 아이들은 좀 더 편하게 등굣길을 걸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가방을 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책가방은 어떻게 보면 내 아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무게인 것이다.
매일 저녁 술 한잔 마시지 않으면 회사에서의 긴장감이 계속되어 잠이 잘 오지 않는 때가 있었다. 그런 것을 핑계 삼아 퇴근 후 한두 잔씩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는 날도 있고, 해외여행 갈 때 사놓았던 코냑을 꺼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이젠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나면 안 그래도 휑한 머리카락이 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덧 돈 많은 사람도 부럽지만 머리털 많은 사람도 부러운 나이가 되었다.
요즘은 술 한 잔 하는 낙 없이 지내다 보니 회사에서 생겼던 걱정, 근심, 고민들이 잊혀지지 않고 저녁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이런 인생의 무게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버드 같은 명문 대학을 나오고도 나의 3-40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어느 유명인의 고백을 듣고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이들처럼 이 나이에도 누군가가 대신 들어줄 수 없는 책가방을 메야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내가 있듯이 나에게도 나를 지켜 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의 짐을 대신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큰 힘이 된다.
오늘은 하루 종일 미팅이 계속 있었다. 미팅에서 험한 소리도 들리고, 타인에 대한 비방도 들렸다. 때로는 해결책이 필요한 때에 나 역시 마땅한 대안이 없어 무기력감도 느꼈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기고 끝난 마지막 미팅에서도 아무 결론없이 끝나면서 마지막 남은 나의 진을 빼놓았다. 이렇게 무거운 짐만 계속 올려졌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그나마 오늘은 술도 아니고 고민도 아닌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며 편하게 하루를 마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