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디스크에 관하여

불행의 의미 - 해석과 선물

by 노용기

한 연예인이 있었다. 그는 팬들이 마신 음료수를 받아 마셨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한 동안 그는 음료수를 마시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이겨 내고 싶어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부여 잡아가며 힘겹게 음료수 한 모금을 목으로 넘겨냈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분명 작은 움직임을 했을 뿐인데 큰 통증이 왔다. 오른쪽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었다. 그리고 그 통증은 다리로 내려왔다. 거의 기어가는 걸음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니 요추 디스크 탈출이 의심된다고 했다. 물리치료를 받고 난생처음 도수 치료라는 것을 받았다. 한동안 제대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통증 때문에 잠이 들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다. 한두 군데를 다녔는데, 그다지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세 번째 방문한 한의원에서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통증이 잦아들고, 허리에 힘이 생기는 듯했다. 그러나 앉아서 무언가를 할 때마다 통증은 다시금 재발되었다. 이로 인해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재활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이렇게 나름 용기를 내어 의자에 앉아 글을 써본다. 무려 한 달하고도 이 주만이다.


허리 디스크로 인해 회사 업무에 지장이 왔다. 예전처럼 무리해서 일할 수는 없었다.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병가를 신청하고 우선 안정을 취했다. 병가 일정이 끝날 무렵에는 누워 일하거나 서서 일했다. 몸상태로 인해 온전히 근무시간을 감당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그로 인해 이메일에 대한 답신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통증이 다시 느껴지면 노트북을 덮어야 했다.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일은 해야 했지만, 그 이상의 열정과 책임은 잠시 내려놔야 했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내가 허리 통증이 있어 요청한 업무를 제 때 회신하는데 당분간 제한 있을 예정이라는 것을 미리 말할 필요가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기대치를 어느 정도 조율해야 했다. 동료들의 다양한 반응을 예상했다. 이해한다부터 하지만 이건 좀 너무 급한 건이라 최대한 부탁한다 등등. 그런데 뜻밖이었던 것은 회사 내 디스크 환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나와 유사한 통증으로 병가를 내고 오랜 기간 입원을 했던 분부터, 최근에 디스크 탈출로 여러 가지 보조 장비를 구매한 분들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스크 환자였고, 최근에 나처럼 환자가 되었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디스크 탈출로 인한 이 고통을 나는 사십이 넘어 찾아온 불행으로 여겼다. 이제 나이가 드니 몸도 하나씩 고장이 나는구나. 혹시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이 통증이 계속 재발되지는 않을까 하며 걱정에 휩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아픈 소식과 고민을 나누는 가운데 이 일이 나만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 나는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이여서 매일 얼굴은 보지만 일 얘기만 했다. 그런데, 나의 고민을 공유하면서 평소에 듣지 못한 동료들의 개인사를 알게 되었다. 그들도 나와 유사한 또는 더한 통증을 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 비슷한 고민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었다. 부서 간 입장 차이로 인해 매번 반대 입장만 주장하던 동료와도 허리 디스크라는 공통된 주제로 동질감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동료애, 전우애, 뭐 그런 평소에 흔히 느끼지 못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게 된다. 그때마다 당황하게 되고,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거지 하며 좌절하고 때론 분노까지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며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점차 상황을 극복해 나간다. 그러면서 인생의 바운더리가 점점 확장되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도 점차 넓어진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며 조금씩 성숙해 가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더 확장되어 인류애(humanity)로 발전하기도 한다. 성인(聖人)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고 보면 원치 않은 불행도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다. 물론 그 의미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 선물의 크기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PS.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동안 조금씩 통증이 다가옴을 느낄 때마다 허리와 다리를 조금씩 마사지해 주었다. 다행히 글을 마친 지금까지 전과 같이 아프다고 생각될 정도의 통증은 느끼지 않았다. 다행이다. 조금은 더 안정을 취하고 재활에 시간을 쏟아야겠지만, 이제 조금씩 다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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