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에 관하여

그렇게 부장이 되었다.

by 노용기

"노 부장, 부장 된 거 축하해!"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첫마디가 축하 인사였다.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감사의 표현을 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십몇 년 전,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열정이 가득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백수로 지내는 날이 길어진 상황에서 일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일'이란 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나는 마치 걸신이 든 사람처럼 일을 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유능한 동료들도 함께하여 좋은 실적들을 만들어 냈다. 그로 인해 내심 빠른 승진도 기대했다. 입사 3년 차였던 때, 내가 속한 부서 전체를 대표하여 올해의 직원상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함께 입사 동기들과 동일하게 연차에 맞춰 사원에서 주임 진급을 했다. 위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직을 했다. 이직할 때 급여는 올랐지만, 직급은 주임을 유지했다. 이직한 회사에는 30대 중 후반 대리도 많았고, 40대 막 과장을 단 사람도 많았다. 아직 30대 초반인 내게 대리 직급을 달아 주기는 어려웠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늦은 나이에 대리가 되었다. 대리가 되는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 회사의 동기들은 이미 대리가 된 지 오래였고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사에 다니 던 몇 년 동안 나는 계속 대리라는 직급을 유지했다. 그 사이 다른 회사에 다니던 친구들은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고, 팀장이 되었다.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회사에서도 나름 괜찮은 성과를 내었고, 부서마다 한 명씩 받는 올 해의 직원상을 받고 성과도 좋았지만 승진의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팀장과의 사이도 처음과 달리 점점 좋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고 생각한 나는 이직을 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바로 차장이 되고, 팀장이 되었다. 바로 어제까지 대리였는데, 하루 만에 직급과 직책이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직장 생활에서 과장이라는 직급으로 불려 본 적이 없다.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한 회사에서 노력해서 만들어 낸 성과로 승진한 것이 아닌 이직을 통해 승진을 했던 것이라 승진의 기쁨 같은 감흥은 크게 없었다. 이 전 회사와 달리 세 번째 이직한 회사에서는 그리 오래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 회사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과장도 있었고, 나보다 그 회사를 오래 다녔으나 팀장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부서장도 많았고, 그로 인해 입사 첫날부터 텃새 같은 것이 있었다. 출근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직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전 직장에서 부여받은 차장 직급은 그대로 가져왔다. 다행히 이번 회사에서는 적응을 잘했고, 직장 생활 처음으로 노력을 인정받아 부장이라는 직급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후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이 번 회사는 일이 참 많다. 주중에 일을 마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주말에도 자연스럽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건강도 악화되었다. 무리해서 일하다 보니 발생한 결과였다. 다행히 업무 성과는 좋아 내심 승진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껏 승진 관련 운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올해 진급하지 않더라도 낙심 말고 내년을 기약하자 다짐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승진 시즌이 되면, 낙심하는 순간이 온다. 나보다 경력에서나 성과에서나 차이가 없거나 오히여 모자란 듯 보이는 사람이 승진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승진을 기대하며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크게 상심할 수밖에 없다. 나와 동일한 나이에 있는 사람이 먼저 승진하거나 오히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먼저 승진하는 경우도 있다. 그 충격은 마치 거대한 바위를 내 가슴 위에 쿵 떨어뜨리는 것처럼 꽤나 크다. 첫 번째 회사에서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을 나와 상호 경쟁하던 두 분이 계셨는데, 그중 후배가 먼저 차장 진급을 하자 선배 되시는 분은 한동안, 아니 차장 진급이 될 때까지 상당히 힘들어하셨다. 나 역시 동년배인 사람이 먼저 승진하거나 오히려 나보다 경력이 짧은 사람이 먼저 승진하는 경우도 몇 차례 경험했다. 겉으로 그 사람들의 승진을 축하했지만 속으로는 승진 기준에 이해가 되지 않아 한동안 술로 마음을 위로하며 피폐한 날들을 보내기도 했다.


승진 관련하여 고민이 많았기에 지인 중 임원이신 분께 승진 기준과 나의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분이 해 주셨던 말 중에 기억 남는 구절이 있다.


"승진 대상자에 오르지 못했을 때 이해가 안 되고 낙심할 수 있다. 그럴 때 혹시 나보다 더 열심히 했고, 더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승진 대상자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있나 한 번 주위를 둘러보길 바래."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새로운 눈이 떠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나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고, 분명 나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잘 한 사람들이 있었다. 승진의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공정해 보인다. 승진 심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때로는 일의 성과보다 다른 요소가 더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회사 내 어디선가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하는 누군가도 분명 승진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누락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인의 조언 덕분에 나는 내게로만 향했던 시선에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눈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 공지된 승진 대상자가 참 많았다. 사실 직장 생활 초기 승진은 늦었지만, 차장을 단 이후로는 그리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장도 만약 올해 단다면 내 나이로 볼 때는 빠른 편이라 생각했다. 물론 회사에 나보다 더 빨리 부장들이 된 사람이 있어 다소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만약 승진을 못하더라도 내년을 기약해도 된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부장이 된 것을 보고, 만약 이번에 승진을 못했다면 한 동안 또다시 술로 세월을 낭비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만큼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승진 대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회사 어디에선가 자신의 일을 충분히 감당했음에도, 그리고 승진 연차가 충분히 되었음에도 승진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승진 대상자가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있는 그분들에게도 마음의 위로가 함께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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