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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Feb 25. 2024

'화'는 흘려보내는 거였네요.

How to deal with anger?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옛말이 있다. 오랜 기간 신뢰를 쌓았어도 그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한순간일 때가 있다. 보통 이러한 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언제일까? 내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화'를 내게 되는 상황이 그러하다. '화'라는 것이 참으로 통제가 어렵다. 꾹꾹 참아 누를수록 스프링처럼 한 순간에 튀어 오르니 말이다. 화를 낼 때마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느껴 스스로 자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다. 한 명은 초등학생이고, 다른 한 명은 이번에 중학생이 된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지만 가끔씩 내는 '화' 때문에 점점 거리가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지 여러 번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특히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 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아이들이 서로 끊임없이 싸우고 다툴 때, 이유 없이 부모에게 짜증을 낼 때는 나도 '화'를 주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화'와 관련된 책도 많이 보고 강연도 자주 들었다. 종교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교회에서는 보통 성령 충만을 통해 사랑으로 이웃을 품으라고 말한다. 평소 충만한 마음을 유지하여야 '화'를 내는 일 없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가에서는 '화'라는 것을 바라보라고 한다. '화'와 나를 동일시하지 말고 잠시 상황을 떨어져서 바라보라고 말한다. 둘 다 도움이 되는 조언이고 실천도 해보았다. 하지만 매일 충만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고, 바라만 보기에는 삶에 여유가 없을 때도 있다. 때론 '화'를 내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최근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나에 대한 존재감이 작아짐을 자주 느낀다. 예전 같으면 큰소리치고 화를 냈을 상황인데, 이제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기 우리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덕분에 '화'를 내지 못하니 꾹 참고 넘기는 연습이 저절로 된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때론 우울감 마저 들었다. 어디 가서 울분을 터트리고 싶고, 때로는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루종일 잠 못 이루고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쓰며 나의 감정을 모두 뱉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화'를 다스리는데 궁극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감옥에서 아내인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옥중서신을 읽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점잖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며 또 입장도 남과 다르니 기관원이나 그 계통 사람 대할 때는 오직 정중한 언행으로 일관해서 그들이 내심으로는 더 우러러보도록 해 주기 바라오."


"어디에서든 정부를 비꼬는 말을 않는 것이 좋겠소. 오래 핍박받고 야당 하면 사람이 거칠어지고 언어 사용에 뒤틀린 투를 많이 쓰게 돼요. 아마 밖의 분들도 그럴 거요. 그러니 당신과 나는 입장이 다르니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 것으로 믿소."


당시 이희호 여사가 검찰과 관계 기관에 남편의 어려움을 전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의 감정의 절제가 잘 드러나 있다. 억울한 일로 감옥에 갇혔다는 감정의 토로 없이 편지를 수신하는 자의 평안을 바라면서 담담하게 요구사항을 적어 내려갔다. 


 이러한 경지에는 어떻게 닿을 수 있는 것일까? 아직 부족하지만 최근 한 가지 깨닫고 실천함에 있어 도움 받았던 태도가 있어 나누고 싶다. 요즘 나는 어려운 일들로 인해 매우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울컥 화가 올라오는 일이 잦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지금은 화가 나지만 곧 이 감정이 지나갈 거야.'


 이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화를 흘려보내고 나면 다른 감정이 자리를 차지함을 경험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 내 상황이 예전처럼 화난다고 모두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더 잘 연습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 화를 흘려보내고, 그 자리를 좋은 기억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채우는 연습을 하니 감정 조절에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전에는 화가 나면 계속 화가 나는 상황을 생각하면서 화를 더 키웠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을 흘려보내니 분노 단계까지 가지 않는 점이 참 좋다. 


 앞으로도 내가 계속 '화'를 통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화'를 흘려보내는 연습을 더 잘해 보고 싶다. 그래서 오랜 기간 쌓아온 관계가 한순간의 '화'로 무너지는 일은 최소화했으면 한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 더 성장했음을 그리고 이 시간들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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