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예요
아주 가끔 곤란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향하고자 하는 것, 지양하는 바, 지키고 싶은 신념 등을 입 밖으로 꺼낼 때, 그걸 상대방이 공격으로 받는 순간.
이를테면,
- 주에 단 한 번이라도 페스코&락토 비건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
-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최대한 덜 하기 위해서 텀블러를 들고 다니거나 다회용 스테인리스&유리 빨대를 지니고 다니는 것
- 외식하러 갔을 때 배가 조금 불러도 어떻게든 내 몫의 음식은 다 먹기 위해 애쓰는 것
- 오토바이 배달로 나이를 불문하고 배달 기사들의 산업재해 사건사고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배달음식을 지양하고자 하는 것
이런 것들이다.
육류 섭취가 나쁘다고 말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고기를 좋아하고 내장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젠 덜 먹고 싶어 졌을 뿐이다. 게다가 굳이 육류를 선택하지 않아도 필요 영양소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정도로는 건강하다. 건강이고 뭐고 고기가 맛있어서 먹겠다는 사람 앞에 가서 훼방 놓을 생각도 없다.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내가 설마 모르겠는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선 나도 고기를 거리낌 없이 먹는다. 다만 이런 내 신념에 동참하는 이를 만나면 함께 비건 식당을 찾아볼 뿐이다.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일회용 플라스틱을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안다. 나 역시 완벽하게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음식점에 가서 매번 모든 음식을 깨끗하게 비우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맛이 없거나 생각보다 배가 불러 남기는 순간이 당연히 있다. 굳이 배달을 하지 않아도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사다 먹거나 포장해 올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좀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배달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배달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는 걸 안다. 일회용 플라스틱, 외식, 배달과 같은 것들은 애초에 편의성을 위해 생겨났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오로지 내 기준에 맞춘, 내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완벽히 지킬 수 없음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또한 완벽할 수도 없다. 인류가 편리해지고자 생겨난 문화 속에서 나라고 그 혜택을 누리지 않았겠는가. 다만 어느 순간에 이 지나치게 편리한 혜택들이 역설적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나는 나만으로도 벅차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까지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지켜나가고 싶을 뿐이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난주만 해도 편의점에서 500mL 생수를 사 먹고 그 병을 간단히 쓰레기통에 버렸다. 구내식당을 갔는데 고기반찬이 절반 이상이라 그냥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어떤 사람들은 가끔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혹은 자신을 탓하는 것으로 듣기도 한다.
내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왜 당신에게 공격이 되는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억울할 뿐이다.
이것들이 공격으로 느껴진다면, 당신 역시 일정 부분 내가 느끼는 불편함에 공감한다는 얘기고 그렇다면 날 탓하기 이전에 어떤 면이 날카로웠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나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지켜나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대단히 대단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키는 날보다 지키지 못하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럼에도 힘이 닿는 데까지는 노력하고 싶고 지키고 싶은, 느슨하게나마 스스로에게 약속한 무엇일 뿐이다.
저는 누군가를 나서서 공격할 만큼 에너제틱하지 않으므로, 안심하세요...
물거나 해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