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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May 08. 2023

프로불편러와 섬세함의 차이

혹은 꼰대와 예민함의 차이

나는 요즘 말과 언어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섬세한 사람인지, 예민한 사람인지, 불편한 사람인지, 꼰대짓을 하는 사람인지 같은 것들과 함께.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요 근래 들어 더더욱 진지하게 삽질까지 해가면서 함몰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열심히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30대 초입까지만 해도 난 아직 젊고 어리다고 우겨봄직 했는데 이제는 젊다고는 우겨볼 수 있어도 어리다고는 입이 비뚤어져도 말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

사람이 염치가 있지. 나이 마흔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 마흔을 목전에 두고 감히 어리다는 표현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뿐일 테다. 내 스스로는 어리다고 칭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회사에서도 어디 사적인 모임을 나가도, 나랑 동년배거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찾기가 몹시 힘들어졌다. 어딜 가도 연장자에 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냥 가볍게 툭 건네야 하는 농담도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된다. 이런 표현을 요즘도 쓰는 걸까. 무슨 맥락으로 농담이 됐는지 이해할 수 있는 세대가 이 안에 있을까. 이 고민이 깊어지면 내가 과연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가 하고 자격을 따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혼자 자격지심이 생겨버린다. 꼰대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 같다. 다소 억울한 점은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숙고하는데 상대방은 과연 그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걸 억울해하면 안 되는데 억울해진다.

사람은 모두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자라났고 각자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있다. 그래서 모두 만족시킬 순 없다.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옳다고 믿는 것, 상식적이라고 믿는 것, 최소한 이 정도의 배려와 예의는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그렇게 허들이 높은 것일까. 이에 대해 끊임없이 또 고민하고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믿는 당연함은 세상이치가 인정하는 당연함이 아닌가 하는 오만함부터 버려야 이 고민이 옅어질 것 같은데 한 편 내가 그렇게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싶은 억울함도 생기는 것이다. 오만함과 억울함. 이게 문제다. 이것들을 버려야 마음이 편해질 텐데 그러질 못해서.


들통날 게 뻔한 거짓말은 안 하는 게 좋다는 것,

약속했으면 지키려는 노력 정도는 하는 것,

관계와 상황에 따라 농담이 농담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일면식도 없는 초면에 섣불리 위험한 농담을 건네는 것보단 차라리 취미를 물어보는 게 낫다는 것,

서로의 정체를 알 수 없다면 언행에 예의 한 스푼은 담으려 노력하는 것...


이런 것들은 내가 생각했을 땐 너무 당연한 것들인데 내 생각만큼 당연스럽게 수행되고 있지는 않다는 게 내게 큰 괴리를 주고 있다. 까딱 잘못하면 진지충이니, 꼰대니 하는 멸칭을 뒤집어쓰게 될 위기도 함께 안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나는 어디에 중심을 두고 행동해야 할까.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을 그냥 곧이곧대로 밀고 나가도 괜찮은 관계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알면서도 실행하기가 어렵다.

어디에서 타협해야 하고 어디쯤에서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


요즘은 특히 사람들이 더더욱 말을 함부로, 가볍게 툭툭 내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나는 그런 걸 볼 때면 여기서 웃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반응해야 하는지 이건 실례라고 정색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어렵기만 하다. 우리네 윗세대 어른들도 나와 같았을까.

나를, 우리를 대하는 게 이렇게나 혼란하고 복잡했을까.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가 차라리 깔끔하고 쉽다는 얘기를 이제는 진정 이해할 수 있다. 수학은 이차방정식에서 포기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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