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떡볶이를 먹으려고 했어.
사실 오늘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어.
떡볶이는 내 소울푸드거든.
근데 또 떡볶이가 다이어트에 그렇게 치명적이야.
운동 시작 하기 전에는 주에 3번은 떡볶이를 먹었었는데, 이젠 그러면 안 되잖아. 사실 뭐... 안 될 것까진 없는데 난 도달하고 싶은 목표 수치가 분명히 있으니까. 그 수치에 가닿으려면 떡볶이는 정말 많이 참아야 하거든.
아침에는 pt수업하면서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한테 그러는 거야. 마라탕떡볶이 안 된다고. 내가 그것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걸 잘 알고 계시긴 한데, 오늘따라 유독 선생님 뒷덜미에 뭐가 지나가기라도 했나? 나는 떡볶이를 먹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딱히 아침까진 먹을 생각도 없었는데, 마치 내가 오늘 작정하고 먹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셨는지. 걱정과 협박 비슷한 것과 나름의 애원을 한 숟가락씩 섞은 표정과 목소리로 오늘은 참고 차라리 내일 먹으라고, 주말에 먹으라고 당부하셨었거든.
적당히 알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운동을 끝냈어. 운동하고 씻고 근육통을 동반한 상쾌함과 함께 출근해서 종일 빡세게 일하다가 퇴근시간이 다가오니까 갑자기 그때부터 떡볶이가 그렇게 먹고 싶어지는 거야. 꼭 하지 말라고 하면 일부러 더 하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저녁에는 필라테스를 등록해 둔 게 있어서 퇴근하고 또 운동을 가야 했는데 필라테스 끝나고 나오면서 떡볶이... 사 먹을까...? 하는 생각이 막 스멀스멀 올라오더라고. 그런데 아침에 트레이너 선생님이랑 나눈 대화가 있잖아. 어쩔 수 없이 생각을 고쳐먹고 선생님의 목소리를 애써 떠올리면서 마라탕 가게는 눈 감고 후다닥 지나쳐서 잘 참았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 근방에는 어쩜 이렇게 떡볶이 포장마차가 많은가 몰라. 떡볶이에 소주가 또 기가 막히는 짝꿍이거든. 금요일이라고 퇴근한 직장인들 전부 노상식탁에 앉아서 떡볶이에 순대에 어묵까지 놓고 한잔씩 나누고 있더라고. 마라탕을 파는 곳은 주변에 하나뿐이어서 어떻게 잘 넘어갔는데 분식포차는 역 앞에 주루루룩 줄 서있어서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힘든 거 있지. 게다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한 테이블씩 차지하고 앉아 먹고 마시고 떠드는 걸 보니까 갑자기 순간 너무 외로워지는 거야. 아니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데 떡볶이 한 접시 먹는다고 뭐 얼마나 큰일이 나겠냐. 그동안 잘 참았는데 오늘 먹고 내일부터 또 참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더라고. 그리고 난 오늘 출근 전 헬스, 퇴근 후 필라테스로 하루에 운동을 두 번이나 했는데 떡볶이 한 접시가 뭐 어떤가 싶으면서... 한마디로 그냥 자기 합리화를 해버린 거지.
그렇게, 아주 용감하고 씩씩하게 분식포차 중 한 곳으로 들어갔어. 머릿속에서 트샘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가 순식간에 전세역전 해버린 순간이었지. 그리고는 정말로 아주 비장하게, 천막을 뚫고 들어갔는데 뜻밖에 사장님이 혼자서 너무 바쁘신 거야. 천막 안으로 들어선 날 보시면서 사장님은 다소 지친 목소리로 밖에 주문하신 분들이 3팀이라 조금 오래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으시더라고. 보통 이렇게 묻는 함의엔 속뜻이 숨어있다고들 하지 아마. ‘너 지금 주문하면 한참 기다려야 하고 난 바쁜데 다른 데 가라’ 이런 뜻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길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너무 바빠 보이셨고.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여기서 물러날 수가 없었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 들어설 결심을 했는데. 그래서 그냥 눈치 없는 손님 컨셉으로 밀고 나갔어. 괜찮다고 대답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꼬치어묵과 국물을 곁들이면서 내 순서를 기다렸어.
그렇게 한 5분에서 10분쯤 기다렸을까. 철판 위에서 끓고 있던 떡볶이들이 차츰 사라지는 거야.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었던 거지. 네가 떡볶이를 먹으려면 새로 끓여야 하는데 그걸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떡볶이를 먹기 위해 10분을 기다렸는데 그냥 나가기가 너무 억울했어.(그 사이에 또래로 보이는 다른 손님이 떡볶이를 먹으러 들어왔다가 새로 끓여야 한다는 말에 그냥 나가기도 했어.) 사장님은 노상에 앉아 기다리는 손님들한테 모든 서빙을 마치고 숨 고를 틈도 없이 곧바로 철판에 냉장고에서 꺼낸 떡과 어묵과 물엿과 고추장과 설탕과 생수를 와르륵 쏟아 넣고 불을 올려서 그것들을 젓기 시작했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나는, 다시 한번 비장함을 담아 내 몫을 주문했어. “저 순대 하나 주세요.” 하고. 마치 처음부터 떡볶이가 아니라 순대를 먹기 위해 들어간 사람처럼. 태연하고 침착하게. 사장님은 아마 눈치채셨겠지. 실은 내가 떡볶이를 기다렸음을. 그래서 재료를 한데 쏟아 넣는 손놀림이 그토록 다급 했겠지. 내가 순대를 주문하는 순간 사장님은 허무했을까? 다행이라고 여기셨을까? 빨리 먹고 가주길 바랐을까? 나도 어쩌다가 판매자 행세를 해본 적이 있지만 소비자였던 적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사장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었어. 이래저래 미루어 짐작만 해볼 뿐이지.
떡볶이가 먹고 싶었지만 결국 순대를 먹은 그 30분이 얼마나 대단해서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느냐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그런 순간이 있어. 별 일 아닌 시간에 별 일 아닌 소소한 어떤 경험이 마음에 남아서 어떻게든 흔적을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
아마 사장님의 마음이 궁금했던 것 같아.
만약 내가 조금... 허물없이, 거리낌 없이 상대와 거리를 좁힐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유머와 배려를 담아서 사장님한테 물어봤을 거야. “저, 기왕 기다린 김에 떡볶이 마저 기다릴까요? 아니면 차라리 순대 먹을까요? 사장님 뭐가 더 좋으세요! “ 하고. 이러지 못한 게 조금, 조금 많이 아쉬웠던 것도 같아.
아, 그리고 트레이너 선생님한테는 장문의 변명문이 될 수도 있잖아. 결국 내가 저녁으로 분식을 먹긴 했는데 떡볶이는 안(못) 먹었고 대신 순대를 먹었으니 괜찮지 않으냐 하는... 떡볶이 섭취 미수범으로써의 어떤... 도리랄지... 안 먹은 건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