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눈이 내리다

『고래눈이 내리다』를 읽으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들

by 에스텔


1.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그러니까 심장이나 뇌, 뼈, 피와 살, 폐… 와 같은 물리적인 요소들 외에 또 무엇으로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지 새삼 궁금하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느껴지는 감정, 하고 싶은 말들… 마구잡이로 뒤섞인 이것들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발화지점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비유하는,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명확히 구분 짓기 어려운 덩어리들이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르게끔 하는 것이라면 비인간 유기체는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2. 썩지 않고 녹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 계속해서 쌓이기만 하고 치우기는 어려운 우주 쓰레기, 너무 많은 인간의 개체수, 끊임없이 낭비되는 유한한 자원들... 같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다.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은 21세기의 풍요로움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이 풍요는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 인류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무서우리만치 풍족한 소비를 줄이고 필요 없는 생산을 멈추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화장실의 변기 레버를 한 번씩 내릴 때마다, 휴지를 두어 장씩 사용할 때마다, 컵에 남은 커피의 잔여물을 개수대에 흘려보낼 때마다 동시에 나와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버려지는 물, 휴지, 커피찌꺼기... 를 상상하다 보면 당장 내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3. '까마귀가 날아들다'는 흔한 표현으로 짧고 굵다. 고작 10장이다. 10장으로 읽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 책이 25년에 출간됐길래 이 꼭지는 작년 12월쯤에 쓰인 글일 줄 알았다. 아니었다. 대입하여 상상하고 떠올릴 수 있는 사례가 이렇게나 많다는 게 절망인 동시에 그럼에도 우리는 미세하게나마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라를 차지할 자격이 없는 놈들이 나라를 차지했다는 문장이 사무친다. 대선을 앞두고 있어 더욱더 그렇다.


4.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그게 죽음 이후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죽음을 넘어 스캔된 개체의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인가. 그걸 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렉 이건의 소설이 생각났다. 전신마비가 된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아내는 남편의 뇌를 새로운 몸에 이식해 살려냈는데 더 이상 남편으로 느끼지 못했다. 뇌가 온전하게 이사했다면. 그러니까 마치 컴퓨터 C드라이브 직박구리 폴더 속 파일을 잘라내 직박구리 2 폴더로 옮기듯이 그렇게 옮겨진 게 맞다면.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다름이 없을 텐데 아내는 왜 남편을 남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가. 1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필수요소는 무엇인지.


5. 인간중심주의의 오만함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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