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스로에게 놀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의 요리 실력이다. 결혼 후, 꾸준히 음식을 만들다 보니 요리 실력이 쌓이는 걸 실감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요리 실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냉장고에 있는 기본적인 재료들을 나름 조합해보며 국이나 찌개, 반찬 두세 가지로 한 끼 식탁을 차릴 수 있는 정도이다.
내 요리 실력이 나름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이를 위한 음식을 만든 시간 덕분이다. 우선, 이유식을 만들며 재료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다양한 재료들을 맛 보여주기 위해 흔하게 볼 수 있는 채소부터 평소에는 잘 해 먹지 않은 해산물까지 두루 손질하다 보니, 재료의 특성과 조리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재료끼리의 궁합, 육수 내는 법 등도 이유식을 만들며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끝내고 어른과 같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음식의 맛을 내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는 쓸 수 없으니 소금과 간장으로만 맛을 내는 게 처음에는 영 쉽지 않았다. 어떤 재료를 써도 맛이 다 비슷하게 느껴져 내가 먹어도 별로 맛있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하다 보니 부재료 등을 사용해 조금이라도 맛이 더 사는 반찬들을 만들 수 있게 됐다.
1년 가까이 이런 요리들을 해오다 보니 철에 상관없이 아이도 잘 먹고 어른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나의 ‘국 레퍼토리’가 몇 가지 생겼다. 미역국, 황태콩나물국, 소고기뭇국, 조갯살 감잣국 그리고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인 된장국. 개인적으로 결혼 전에나 신혼일 때는 된장국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된장국보다는 칼칼한 된장찌개를 주로 먹었는데, 아이와 같이 먹으려다 보니 된장찌개보다는 된장국을 더 자주 끓인다.
내가 된장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냉장고에 있는 아무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역국도 소고기, 닭고기, 가자미, 홍합 등 부재료를 달리 하여 여러 종류로 만들 수 있지만 된장국만큼 흔한 재료로 끓일 수는 없다.
요리 초보 시절에는 감자, 양파, 애호박, 버섯, 두부를 다 넣어야지만 맛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든 채소를 다 넣는 것보다 맛이 어울리는 두 가지 정도의 재료만 넣어 그 재료의 맛만 확실히 볼 수 있는 된장국이 더 좋아졌다. 감자와 양파 정도밖에 없을 때는 그렇게만 끓여도 맛이 좋다. 감자의 담백함과 양파의 달달함만으로도 훌륭한 국이 된다. 이때는 다진 마늘을 넣지 않는 편이 훨씬 좋다.
시원한 맛의 된장국을 먹고 싶을 때는 얼갈이배추와 콩나물을 넣어 끓이면 딱 좋다. 된장에 고추장을 조금 섞어 끓이면 좀 더 시원하고 진한 맛을 낼 수 있지만, 아직 소량의 고추장 맛도 맵게 느끼는 딸과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때는 된장만 넣어 끓인 후, 어른 국에는 고춧가루를 조금만 풀면 얼큰한 맛이 난다.
소고기와 배추를 넣어 끓이면 깊고 구수한 된장국이 된다. 내가 얼갈이된장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된장국이다. 소고기 육수의 깊은 맛과 달달한 배추가 어우러져 한 그릇 먹고 나면 사골국 못지않게 몸보신을 한 느낌이다. 배추 대신 양배추를 넣어도 달달한 맛은 그대로다. 많은 양배추를 빨리 처리하기에도 좋은 메뉴다.
최근에는 미소된장을 처음 사봤다. 문득 일식집에서 먹었던 미소된장국이 생각 나서다. 그런데 요즘 부쩍 생긴 요리 자신감으로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고 만들었다가 후회를 했다. 일반 된장국처럼 멸치로 육수를 냈더니 멸치의 비린 맛이 확 느껴졌다. 미소된장은 다시마 정도로 간단히 육수를 내거나 된장 맛에 따라 그냥 맹물에 끓여도 크게 상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미소된장은 미역만 있어도 훌륭한 국이 된다. 된장과 미역의 조합은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맹물, 미소된장, 미역만 넣고 끓여도 충분히 시원한 맛을 볼 수 있었다. 미역미소된장국은 푹 익은 미역보다 어느 정도 씹는 느낌이 있는 미역이 더 어울리기 때문에 마른 미역으로 아주 간단하게 끓일 수 있어 늦잠을 잔 주말 아침에 딱 먹기 좋다.
코로나19로 온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요즘, 마음 편하게 지내자며 잠자는 시간을 자유롭게 했더니 오늘은 늦잠을 자고 말았다. 보통 먼저 밥 달라는 소리를 안 하는 아이가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배고파요, 밥 주세요”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국도 밥도 어제저녁 깨끗이 해치운 상태. 간단히 간장계란밥을 해줄까 하다, 밥솥이 쾌속으로 돌아가는 동안 감자된장국을 끓이기로 했다.
멸치가루로 육수를 만들고 된장을 체에 걸러 국물을 만들었다. 다용도실의 양파는 겉은 멀쩡했지만 속이 썩어 쓸 수가 없었다. 있는 대로 감자와 애호박을 얇게 썰어 밥이 되는 시간 동안 된장국을 끓였다. 냉장고에 있던 메추리알 장조림과 동치미 무를 반찬으로 해 아이는 오랜만에 아침을 배부르게 먹었다. 이런 날이면 난 꽤 완벽한 주부, 엄마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8할은 된장국 덕분이다. 오늘 저녁 냉장고로 들어간 된장국 냄비가 바닥을 보일 때면 ‘된장국의 8할’은 생각도 나지 않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또 다음 된장국을 만나게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