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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Jul 09. 2023

가벼운 마음으로



자연이가 인간의 죽음에 대해 처음 인식한 게 언제더라. 1년이 훨씬 넘었던가. 본가에 계신 나의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하다 내가 “왕할머니는 아주아주 오래전에 태어나셨어. 그다음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어났고, 그다음에 엄랑 이모, 삼촌이 태어났지.”라고 설명을 했다. “왕할머니도 아기였던 때가 있었어. 점점 자라서 어린이가 됐다 어른이 됐다 할머니가 된 거야.”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연이가 물었다.

할머니가 되고 나면 뭐가 돼?”     


나는 “할머니가 되면 죽고 다시 아기로 태어나.”라고 말해 주었다. 그냥 죽고 끝난다고 하면 무섭고 불안하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도 아니고 윤회사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지만 그게 네다섯 살 (외동인) 아이에게는 최선의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자연이는 사람이 나이 들어 죽으면 다시 아기로 태어나고 자라 또다시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자신이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질문도 했다. “자연이가 할머니가 되면 엄마는 죽고 아기가 돼?” 나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장난스럽게 “엄마가 아기로 태어나면 자연이가 엄마 키워줄 거야?”라고 물으면 자연이는 익살스럽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싫어~~!” 하고 답하기도 했다. 어제는 자려는데 『내가 어디서 왔게』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태아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는지 알려주는, 평소에도 자연이가 자주 보는 그림책이다. 자연이는 특히 한 달 된 태아를 보고 “너무 귀여워” 하며 혼자 그림을 한참 동안 보았다. 그러더니 자연이가 다시 태어나면 어떤 엄마, 아빠를 만날까? 자연이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다시 태어날까?” 하며 딱히 대답을 구하지 않는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당연히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날 거라고 믿는 줄 알았던 나는 좀 놀랐다. 그리고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주인공 반지음이 떠올랐다. 매번 새로 태어날 때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현생이 심지어 19회 차다). <도깨비>에서는 “망각도 신의 배려”라고 했는데 그 말이 확실히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억을 안은 채 살아가면 얼마나 많은 번민에 시달리겠는가. 그런 점에서 반지음은 아무리 전생의 귀한 인연을 다시 만났대도 지금의 삶이 참 무거울 것 같다.



     


나는 요즘 꽤 가벼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렇게 살려고 전에 없던 노력을 하는 건 아니다. ‘중꺽마’나 열정 같은 단어가 나에게 불가능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저 요즘 나에게 오는 것들이 나를 가볍게 살도록 이끄는 것 같다. 책 속 문구가, 남편과의 대화가, 새로 시작한 운동이, 나에게 조금은 단순하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현생이, 현실이, 지금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이런 나의 생각과 마음을 꺼내놓게 하는 이 글쓰기 또한 나를 가볍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에버노트를 뒤적이다 ‘36살의 내가 아는 것’이라는 제목의 메모를 발견했다. 3년 전의 내가 그때 ‘확실히’ 알고 있다고 느낀 것들 몇 가지를 써놓았다. 이런 게 있다. ‘사람은 자기가 깨닫기 전까진 절대 모른다. 그게 사람의 로직이다.’ 오늘의 내가 뭔가를 조금 더 느끼고 깨닫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사하다.      



/23.07.09.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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