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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뫼 Dec 02. 2023

당근이 싫어요

나는 당근이 맞지 않은 사람이에요



요 며칠 당근으로 작아진 아이의 옷을 팔았다. 연에 두 번밖에 입지 않은 한복과 더 이상 배우지 않아 필요 없는 발레복, 겨울철 두어 번 입고만 패딩 바지 같은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일상복보다는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일 년에 몇 번 입지 않을 옷들이 잘 팔린다.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일상복도 올려놓았지만 연락이 없다.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 하트가 눌리지 않는 일상복을 ‘나눔♥’으로 바꿨더니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살 수 있냐고 물어 그렇다고 하니 더 이상 아무 얘기가 없는 사람, 멀어서 못 온다는 사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눔을 받겠다고 해놓고 못 오겠다는 사람 등을 거쳐 문의 온 날 바로 받아가겠다는 사람과 거래를 하게 됐다.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보니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리더니 “잘 입겠습니다.” 하고는 빠른 속도로 종이봉투를 받아갔다. 손녀딸 줄 옷을 당근으로 무료 나눔 받아갈 할머니가 없진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 아주머니는 ‘없는 살림’을 꾸리는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래, 나눔으로 팔리지 않았으면 재활용 수거함에 버려질 옷이었으니 누가 가져가면 어떠냐고 생각했지만 공짜로 받아간 옷으로 왠지 수익을 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난 속이 좁고 세상을 편협하게 보는 사람이라서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저녁에 남편에게 이 얘길 하니 남편은, 어떤 사람 만날지도 모르니 아깝더라도 그냥 수거함에 버리라고 했다. 그래도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든 나는 공짜로는 줄 수 없고 1천 원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의 패딩 바지를 1천 원에 올렸다. 이번엔 다행히 사가겠다는 사람이 금방 나타났다. 아, 근데 이번엔 뭐랄까….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만든 적이 있었을까 싶은 사람이 채팅창을 두드렸다. 거래 희망장소가 나와 있는데도 대뜸 ‘어디에요?’ 묻는 걸로 시작해 ‘제가 내일 아침에 살 거예요’ 라며 희한한 뉘앙스로 구매 의사를 밝히고 한 밤중에 뜬금없이 ‘천원 맞아요?’ 하고 묻는 사람이었다. 그러더니 약속 시간 5분을 남겨두고 생뚱맞게 ‘가고 있어요’라는 자기 존재를 다시금 어필을 해왔다. 언제 도착하냐는 내 물음에 약속 시간보다 20분 늦은 ‘9.50쯤’이라며 아주 간략한 답장을 해주었다.

     

천 원 한 장 받으려고 당근에 물건을 올린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말이 맞았다. 아주 잠깐 스쳐가는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 만날지 모를 일이었다. 나에겐 앱으로 말을 나누고 또 얼굴을 마주하는 것 모두 나에게 적지만 영향을 주는 일이었다. 며칠 지나면 신경도 쓰이지 않을 일이지만 그 사람과 채팅을 하고 만난 그 짧은 순간들이 나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시간이었다. “예민맘 사절”이라는 문구가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였나 보다(○○맘이라는 단어와 ‘예민’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개인적으로는 정말 싫어한다. ‘예민맘’은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인터넷 합성어다). 당근마켓을 주제로 책을 쓸 정도로 당근이라는 공간이 ‘기쁨이자 즐거움,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이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아무튼, 당근이 ‘나의 아무튼’은 아니었던 걸로.  


      

/23.12.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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