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 배수구 철망으로 빠지는 아기 오리를 목격했다. 차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게 불안해 빨리 건너가 인도 위로 올려 주려는 찰나, 두 마리 중 하나가 배수구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한 마리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인도로 올라가더니 아파트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건너가 배수구 안을 보니 이미 빠져 있던 또 다른 새끼가 있었던 건지 새끼 오리 두 마리가 삑삑-거리고 있었다.
철망은 쉽게 들렸지만 바닥까지 손이 닿질 않았다. 게다가 한 마리는 배수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놀라게 해서 배수로 안으로 더 들어가 버리면 영영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파출소, 119, 경기도콜센터, 시청 당직실을 거쳐 드디어 환경과 공무원과 통화할 수 있었다. 접수를 받은 공무원은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출동을 하겠다고 답했다. 통화를 마치자 현장 구조자인 듯한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끼 오리가 빠졌다는 내 말에 “지금 천연 기념물을 구하러 가고 있다”고 했다. 암요, 천연기념물부터 구하셔야죠. 흑흑.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내 눈 앞에는 삑삑거리며 올라오려고 날갯짓을 하는 새끼 오리가 있었다.
구조자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오리에게 두고 나는 일단 아침 산책을 마쳤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배수구를 보니 한 마리는 아예 사라지고 나머지 하나만 자리를 지켰다. 아마 먼저 떨어져 움직일 기력이 없는 듯했다. 길가에 있는 지렁이라도 떨어뜨려 줄까 하고 있을 때, 구조자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배수구 위치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곧 새끼를 구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아저씨는 시청 직원은 아니고 한국조류보호협회 이름을 달고 활동하시는 분이었다. 아저씨가 트렁크에서 둥근 채를 꺼내 새끼오리를 구했다(와!). 구한 새끼오리는 종이 상자로 들어갔다. 김포 장릉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사실 아저씨를 기다리다가 어미로 보이는 오리를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 건너에 있던 한 아저씨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어미가 새끼를 찾다가 날아갔다는 얘기를 했다. 어미와 새끼가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살렸다는 걸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배수로로 들어간 건 또 알아서 잘 살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아저씨가 덤덤히 말했다. 동물농장에 여섯 번이나 나왔다는 아저씨의 말이니 믿어야지(게다가 아저씨는 천연기념물 구하러 가는 것보다 여기를 먼저 와 주신 거였다). 그나저나 웬 오리지? 주변에 하천은커녕 산밖에 없는데…. ‘산오리’라는 게 있나? 네이버에 ‘산오리’라고 검색하니 ‘산오리 회전구이’ ‘낙동강오리가든’이 떴다. 에잇, 찾아보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순간 어제 저녁 자연이와 오리훈제고기를 먹었던 게 생각났다. 헙.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만 2년이 조금 안 되었다. 2년 살면서 시 민원센터에 딱 두 번 전화했다. 처음은 작년 이맘 때였다.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는데 두 마리씩 짝지어 날아다니는 러브버그가 양봉장 벌떼처럼 버글버글했었다. 중학생 아이들은 소리를 꿱 지를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시청에 방역 좀 해 달라는 민원전화를 넣었다. 전화로는 안심이 안 됐던 나는 홈페이지에 글도 썼다. ‘해충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죽일 수는 없지만 방역하겠다. 그리고 2주 정도가 지나면 자연소멸하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식의 답변이 달렸다. 그 다음날에는 방역을 하고 있다는 시청의 증거(?) 사진을 문자로 받기도 했다.
한 번은 ‘죽여 달라’고, 또 한 번은 ‘살려 달라’고 전화를 한 셈이다. 헐, 내가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었나…? 어떤 건 단지 혐오스러워 보여 죽여 달라고 성을 내고, 어떤 건 불쌍해서 살려 달라고 전전긍긍하는 하는 꼴이라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전 자연이를 두고 한 말도 생각났다. 자기 몸보다 큰 먹이를 끌고 가는 개미를 보고 젤리 음료수를 마시며 “힘들겠다.”고 말한 자연이에게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일기에까지 썼는데,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아이스커피를 쫍쫍 마시며 새끼 오리의 안위를 확인했었다(뭐야, 나 진짜 최악이잖아!).
사람이 이렇게 인간적(?)일 수 있나. 처음에는 새끼 오리를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이 스스로에게도 좀 의아할 만큼 유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보고도 모른 척 할 수 없는 건 분명했기에 오리를 꼭 꺼내 주고 싶었다. 결국 나의 만족감을 위해 했던 행동이었던 걸 속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걸 인정하자마자 내 스스로가 인간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인간이라는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느낌…. 인간은 곧 모순덩이리라는 사실을 나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생각과 감정으로 똘똘 뭉쳐진 인간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니 주변 사람들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품는 건 둘째 문제지만 일단 그동안 ‘이해 안 간다’고 표현했던 사람들의 행동에 내가 열 받을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고 하면 믿지 않겠지만, 책의 문구는 나의 이런 깨달음을 더 단단하게 해 주었다. “스스로 모순 덩어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모순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머리만으로는 멋진 춤과 음악을 만들 수 없다.” 몇 번 이 말을 했지만 오늘 또 써야겠다. ‘나는 이런 깨달음의 순간을 정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