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이 찌면 혀도 찌는지 여러 번 의심해본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찾다가 현타가 심하게 올 것 같아 찾아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되면 또 다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이 미술을 보내고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소음 때문에 눈으로만 읽는 게 잘 안 돼 속으로 소리를 내며 읽었다. 입을 크게 움직이지 않아서였을까, 고개를 숙인 자세 때문이었을까. 혀 가장자리가 자꾸 씹혔다. 작년 4월 21일 몸무게를 찾아봤다. 5.3kg이 불었다. 나는 스스로의 양관식인 걸까. 왜 내가 100g도 사라지게 두지 않는 걸까. 사라지게 두지 않는 걸 뛰어 넘어 왜 세상에 나의 질량을 자꾸 늘리는 걸까. 역시 난 조용한 관종일 걸까.
2.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면 무언가 옴짝달싹 못 하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 은근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다음 꼭지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서 책을 계속 읽게 된다. 근데 또 읽고 있으면 그 문장들이 나에게 뭐라도 쓰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정말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내 마음에 드는 에세이 한 편 쓰고 싶지만 현실은 일기다. 그래, 일기라도 어디냐 하는 마음에 끼적이다 보면, 이왕이면 재밌게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마음은 ‘재밌게’인데 내 인생에 재미의 요소는 또 별로 없어서 재미를 제외한 나머지는 어떻게 기록해야 하나 고민이 생긴다.
에버노트 폴더를 세어보니 13개. 물론 폴더 하나하나가 단일한 주제의 글이 담겨 있는 건 아니다. 그중 뭔가 기획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폴더는 7개. 초반 기획의도 정도만 담긴 폴더부터 짤막한 아이디어와 글의 주제 정도가 예닐곱 개 담긴 폴더, 꽤(물론 내 생각) 분량이 있는 글 열 개 정도가 담긴 폴더 등 가지각색의 형태와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구난방인 폴더를 보고 있자니 답답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하나의 폴더를 추가했다. 그 폴더는 얼마나 유지될지, 몇 개의 글이 담길지 모르지만 다시 시동을 걸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
“너를 통해 행위로 번역되는 생명력이, 삶의 동력이, 활발함이 존재해. 너는 언제나 유일한 너이기 때문이고, 이런 표현은 고유하지. 네가 이걸 막으면 어떤 매개를 통해서도 존재할 수 없을 테고, 사라지게 될 거야. 이 세계는 들을 수 없을 거야. (...)”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p.166
작가들은 변태임이 분명하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고통도 느끼고 희열도 느끼고, 자신을 사랑하기도 하고 또 자기파괴의 순간까지 밀어 넣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되어 부차적인 무언가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은 한 번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일을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난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글(일기지만)을 쓰는 건 아니다. 다만 저런 문장들이 책을 덮고 키보드를 두드리게 만들 뿐이다. 오늘 일정 분량의 독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결코 쓸 수 없는 나의 문장들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관심 없는 ‘내 혀의 살찜’ 따위의 글도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조용한 관종, 변태가 거의 확실하다.
25.04.21.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