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에서 자지... "
" 괜찮아. 여기서 자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 "
" 아무리 그래도... "
지은은 이불을 건네며 여상히 스며드는 데자뷰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숨어 있던 불안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지만, 민욱이 보여준 다정함을 믿고 싶은 마음이 그보다 더 크게 자리했다.
지은은 민욱이 자리에 눕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방에 들어왔다.
텅 빈 집 안에 오직 자신과 민욱만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뚜렷이 가슴을 눌러왔다.
지은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 보려 했지만,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쌔액 쌔액 내쉬는 숨소리, 쿵쾅거리며 내달리는 심장 소리 하나, 하나가 귓가에서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천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방 안에서 커다랗게 귓가를 울리는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 이러다 오빠한테까지 들리는 건 아니겠지...? "
두근거림 속에 스며든 것은 설렘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였을까.
민욱이 보여준 다정함과 가까이서 느꼈던 온기에는 분명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한 켠에 자리한 시커먼 악몽은, 그녀를 마음을 알 수 없는 깊은 미로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새벽 2시.
민욱은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의 몸짓은 어둠에 녹아든 그림자처럼 부드럽고 은밀했다.
고요한 집 안, 이불이 스치는 소리는 마치 사라질 듯한 잔향을 남기며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민욱은 문가에 서서 한순간 머뭇거렸다.
민욱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묶인 채, 조종을 당하는 마리오네트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손잡이를 감싸 쥐었다.
차갑게 식어 있던 금속이 그의 손끝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달칵.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가로질렀다.
천천히 열리는 문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방 안의 어둠은 깊고도 고요했다.
마치 담장 위를 타고 넘나드는 고양이처럼, 그의 귀는 주변의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긴장으로 곤두섰다.
옅게 들리는 지은의 숨소리가 민욱의 귀에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들려, 두근대는 심장에 박차를 가했다.
잠이 든 지은의 모습은 마치 순백의 아기처럼 얇게 입을 오므리고 있었다.
살짝 풀어진 자세로 자는 지은을 덮고 있는 얇은 이불은 그녀의 여리한 실루엣을 더욱 부각시켰다.
물기를 살짝 머금은 붉은 입술 위로 내려앉은 달빛이 민욱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민욱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맡으로 다가섰다.
그의 시선은 붉디 붉은 루비에 고정되어 있었다.
흐음, 하고 얕은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 지은으로 인해, 그녀의 입술로 향하던 민욱의 손이 허공에서 떨리며 멈칫거렸다.
얇디 얇은 이불은 지은의 다리 사이로 흘러 그녀의 뽀얗고 탱글한 둔덕 하나를 빼꼼히 내밀어 보였다.
순간, 민욱은 본능적으로 들이마시던 숨을 멈추고는 반짝하고 눈을 빛냈다.
그의 눈빛은 긴장과 더불어 묘한 열감이 섞여 혼탁했고, 그 깊은 속에는 미약한 흔들림마저 깃들어 있었다.
" 괜찮아, 아무도 몰라... "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 삼켜지며 사라졌지만, 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
민욱은 이내 결심이 선 듯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이 잠들어 있던 지은은 몸 위에 얹힌 묵직한 무게에 숨이 가빠지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차갑게 스쳐 가는 기운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고, 점차 깨어나는 의식은 몸을 유영하는 열감과의 대조에 혼란스러웠다.
와닿는 열감은 떨리는 듯 하면서도 주저함 없이 지은의 실루엣을 따라 흘러 내려갔다.
잠든 그녀의 얼굴로 쏟아지는 시선은 한 치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깊고도 강렬했다.
"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또 올까...? "
들려오는 중얼거림 속엔 짙은 아련함이 묻어났다.
귓가에 스며드는 숨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릴 때마다 그녀의 가슴속에선 이름 모를 공포와 묘한 두근거림이 차오르고 있었다.
살결을 타고 전해지는 억눌린 욕망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와 그녀를 감각의 늪으로 이끌어 갔다.
" 멈춰야 하는데... "
민욱은 자조하는 듯 내뱉으며 스스로에게 경고하고 있었지만, 지은의 잔 숨결을 향해 몸을 낮추었다.
지은의 곧게 뻗은 목선이며, 달큼한 숨결들이 스스로를 다 잡으려는 민욱의 실낱같은 이성을 짓누르며 결국 입술 끝에 달콤함을 머금게 했다.
잘게 떨리던 그의 입술은 이내 달콤함에 취해, 반쯤 열린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속에 있는 과즙을 양껏 들이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입안 가득 과즙을 들이키며,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갈망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 깨달았다.
한편, 지은은 묵직하게 눌러오는 압박감에 흐릿했던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갑작스레 입술을 머금어 오는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어서 밀려 들어오는 농밀함에 지은은 채 눈을 뜰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턱까지 차오르는 가쁜 숨을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고 있었다.
입에서부터 퍼져 나간 독은 지은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감각을 들끓게 했다.
손 끝, 발 끝에서부터 스며드는 짜릿한 자극에 소름이 돋았고,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 대던 심장은 결국 온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생경한 감각에 자르르 몸이 떨리며 아랫배 부근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지은은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바짝 붙어 오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 조금만, 조금만 더... "
뜨겁게 오가는 숨결 사이로 끈적한 타액이 오가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사이에도 훑고 있는 민욱의 손 길은 멈출 줄을 몰랐다.
피부 위를 스치는 감각은 더 없이 생생했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닿고 있다는 사실조차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한쪽은 알 수 없는 갈증에 매달렸고, 다른 쪽은 선명하지 않은 감각에 그저 휘둘리는 듯했다.
쪽, 하고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동시에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었지만, 그 시선은 마치 꿈속을 떠도는 듯 서로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했다.
지은은 가까스로 천근 같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희미한 달빛 아래 어렴풋이 보인 것은, 자신의 몸 위에 엎드린 채 고요한 사냥꾼처럼 눈을 마주하고 있는 민욱이었다.
지은은 사냥꾼의 총구 앞에 놓인 사냥감이 된 것 마냥 심장이 순간 크게 뛰었다.
그녀의 몸이 민욱의 시선 아래, 철저히 노출되어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