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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이 Jun 15. 2023

드디어 자유부인

집에 있다고 해서 노는 건 아니야

말똥말똥

빨리 숙면을 취해야 내일 31개월 만에 처음 가져보는 혼자 있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데, 너무 설레어서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반복해 왔던 남편의 휴직과 복직, 코로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악착같이 해 왔던 가정 보육으로 나는 그 동안 한 번도 '나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었다.

3년차에 접어든 코로나에 모든 사람들이 지쳤고,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에 변화도 생겼고, 방역까지 느슨해져 우리 가족들도 조금씩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30개월이 넘은 아이를 이제서야 어린이집에 적응 시키고, 마침 남편의 복직 날짜도 정해진 것이다.

아이와 남편을 동시에 내보내고 오롯이 나 혼자 있게 되는 그 역사적인 날이 바로 내일이다.

결혼 전에도 신혼 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던 나인데, 너무 오랜만에 가져 보는 나만의 시간에 도대체 뭘 해야할 지, 예전에는 뭘 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와 약속을 잡을까, 머리를 하러 갈까, 아니면 완전히 혼자인 채로 지내볼까, 이런저런 생각만 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비행이 있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뒤이어 일어난 딸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혀 등원까지 마쳤다.

주부의, 엄마의 아침 시간은 말 그대로 순삭이다.

무소음을 만끽하며 잠깐 소파에 등을 기대고 흘러내리듯 앉았다.

이대로 아이가 올 때까지 드러누워 있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1분 1초가 아쉬운 자유부인의 귀중한 시간을 그리 보낼 순 없다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일어났다.

태블릿과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무작정 현관문 밖을 나섰다.

목적지도 없이, 앞에 놓인 길에 모든 걸 맡기고 이렇게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건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다. 약속 없이는 밖을 거의 나오지 않았던 나에게 '너 도대체 왜 그렇게 재미없게 살았니?'라고 묻고 싶어졌다.

오늘은 멍 때리는 시간을 좀 가져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평소 봐 두었던 카페 한 곳이 떠올랐다. 그리고 꼭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차를 돌렸다.


잠깐 커피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나는 뼛속까지 '뜨아파'였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냉기가 가득한 실내에서 뜨거운 커피로 몸을 데우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출산 후에는 아이스 커피만 마시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카페에서는 커피를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잠깐 혼자 노는 틈을 타 벌컥 벌컥 마셔야했고, 그 공간이 지겨워져 울음이라도 터진다면 지체없이 커피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집이라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아이와 놀아주며 커피를 마시다 보면, 커피 한 잔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먹게 되는데, 다 식어빠진 커피 보다는 차라리 얼음이 녹아 연해진 커피가 나았다. 그리고 혹시 모를 안전 사고를 대비해서라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포기하는 것이 옳았다.


챙겨온 책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주위를 잠깐 살펴보았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 우리 엄마와 비슷해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 많았다. 예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 가끔씩 특별한 이유없이 연차를 쓰고 평일의 여유를 즐겼던 적이 있었다. 그땐 북적거리지 않은 주중의 낮 시간을 즐기는 여자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뒤에 숨겨진 고충을 그 때는 전혀 알지 못 했으니까.

지금 이 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여자들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나처럼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빨리 끝낼 수 있는 집안일들을 처리하고 헐레벌떡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짧고 굵은 시간이 지나면 또 빛의 속도로 귀가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준비하며 창문 밖이 점점 어두워진다는 것을 느낄 틈도 없이 밤을 맞이할 것이다.

남편과 자녀가 없는 시간을 백화점과 카페에서 보내는 주부들을 마뜩지 않게 여기거나, 팔자 좋은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를 '나야 뭐 그냥 집에 있지'라며 격하시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가사 노동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매일 쇼핑과 브런치에 돈과 시간을 쓰는 사람은 없다. 아내와 엄마, 주부의 경계선을 쉼 없이 넘나들며 티 나지 않는 집안일과 종료가 없는 육아와 뒷바라지로 하루치 체력을 다 소진해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일반 직장인들이 즐기는 주말을 그들은 평일에 가져볼 뿐이다.

그냥 집에서 논다고 평가하기에는 가사 노동의 강도가 꽤 높다. 그리고 가사일은 안락한 삶을 위해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일이다.

전업맘들은 본인을 그저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또한 '집에서 애나 보지, 뭐', '일 안해'와 같은 말로 딸과 며느리를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 분들이 평생 해 온 일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금 세대보다 더 고된 삶을 살았을 그 분들의 삶을 그렇게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나는 전업 주부였던 우리 엄마가 집에서 '놀고', 집안일이나 '좀'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성의 가사 노동이 당연시 되던 시절을 지나온 엄마와, 엄마의 엄마 세대들은 깊이 뿌리내린 가치관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오는 말로 스스로를 찌르기도 한다.

겪어보니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은 나부터라도 그 분들께 박수를,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은 젊은 육아맘들을 토닥여 주고 싶다.


나의 자유부인 시간은 아주 짧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몇 일 지나지 않아 장염으로 원을 쉬게 되었고, 다 나을 때 즈음엔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해 또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4일은 너무 짧았고, 그나마 있는 시간들 조차 병원 투어로 대부분 써 버렸지만, 혼자인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 동안의 응어리(?)가 좀 풀린 것 같았다.

코로나에만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도 약간의 거리두기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지치고 무기력하고, 예민한 감정들이 많이 가라앉았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여유와 부드러움이 묻어나왔다.

이 가정 보육이 또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겠지만, 4일 간의 휴식으로도 많은 것들이 회복되었고, 아이와 부대낄 맷집도 생겼다.

한 동안은 우리 사이가 '그린라이트'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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