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정체성이란 곧 자기 자신을 어디로 카테고리화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나를 대변하는 키워드는 '경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범주화할 수 없다는 의미가 날 제대로 분류한다.
나는 여러모로 경계인이다. 행정구역 상 경기도이지만 서울이 더 가까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에 살고 있으며 10대와 20대의 경계에 있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경계에 있는 열아홉이다.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 양 집단 모두로부터 이질감이 든다. 그리고 사회계급론적 관점에서도 경계에 있다. 지양해야 할 표현이지만 내 자신이 금수저와 흙수저 사이 어딘가에 위치했다고 느낀다. 내 배경 때문에 질투를 받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나의 문화적 배경은 아시아와 유럽. 더 자세히는 한국과 러시아의 경계에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3살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모스크바에서 살았다.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도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에서 본인들만의 독특함을 지닌 곳이다. 그곳에 살 때는 오히려 한국에 온전히 속한다고 느꼈다. 동아시아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러시아인들은 나를 그냥 '한국인'이라 통칭하기도 했다 러시아어와 문화는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모스크바에 살며 유럽을 오갔고 학교에 다녀와서는 현지 학원을 가고, 서방 매체를 보며 자랐다. (이 과정에서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다.)
한국인, 한식당, 한인마트는 물론 동아시아인이 거의 없다시피 한 곳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나와 한국의 유일한 접점은 한국에서 가져온 책, 불법 다운 받은 드라마가 전부였다. 그것들로 향수병을 달래며 한국에 대한 환상을 키워갔다. 다섯 살 무렵부터 책에 빠져 엄청 읽었다. 위인전 같은 아동용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부모님 책도 읽을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글로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때의 경험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에 살아본 적 있는 아빠는 내게 줄곧 '검머외'가 되면 안 된다며 한국식 교육을 받으라고 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한국어로 된 책과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었던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만의 색채를 담은 예술을 하겠다는 추상적인 목표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모스크바는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었지만 왜인지 나는 늘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모스크바가 정말로 집이 되었을 때 나는 한국에 돌아가야 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싫지 않았다. 사실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으니까.
한국에 돌아오면 두고 온 심장의 반쪽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깨달았다. 또 다른 반쪽을 러시아에 두고 왔다는 걸. 한국에 막 돌아왔을 때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역문화차이로 충격을 받았다. 이곳에서 나의 외모는 더 이상 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행동이 너무도 튀었다. 나는 양반다리를 못했으며 김치를 못 먹었고 젓가락질도 서툴렀다. 사람들은 나의 겉모습과 또래보다 나은 한국어 구사력에 나를 한국인 그 자체로 인식했다. 그러다 가끔씩 사람들이 내게서 기대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할 때 나의 외국인스러움은 까발려졌다. 그런 모습들을 들킬 때마다 나는 충분히 한국인이지 못한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는 나의 러시아적인 면모는 쉽게 오해와 미움을 샀다. 한국에서 처음 사귄 친구들은 영미권 교포였다. 그들과의 동질감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차이가 보였다. 그들은 아시안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모스크바와 아시아인이 많지 않은 유럽 등지에 사는 한인들은 아시아가 아닌 '한국'에 소속감을 갖는 것과 사뭇 달랐다. 더군다나 나는 한국 국적자였다. 이로써 나는 교포도 아니고 유학생도 아니고 고려인도 아니고 러시아인은 더욱 아니고 토종 한국인도 아니라는 사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만 명백해졌다.
나의 재한국인화에 힘썼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가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중학생 즈음 드디어 완벽한 재한국인화가 되었지만 오히려 한국과 러시아 모두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러시아어를 잊고, 러시아를 잃어가는 건 나의 유년기와 단절되는 고통이었다.
평생 불완전한 심장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오랫동안 경계에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나는 DMZ에 홀로 사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쓸쓸했다. 아직도 공허함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지만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지뢰투성인 줄만 알던 바깥세상에 발을 내딛고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세상의 경계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사이처럼 휴전선만 있지 않다. 어린 시절 차로 자유롭게 넘나들던 유럽의 국경처럼 일직선이 아닌 그라데이션으로 서로를 물들인 곳도 있다. 나는 여러 세계 사이에서 그들을 이어주고 있었구나, 비로소 그게 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 이야기를 담은 글로 세상을 잇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