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바가 쉽다고 했는가?
나는 낙하산이다.
무슨 말이냐고 묻지 마라.
말 그대로 원장님 눈에 잘 띄어서 꽂힌 알바생이니까.
때이른 장마가 지나가고 햇살이 쏟아지던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필 우리 집 앞에서 원장님 차가 뻗어버린 것이었다. 원인은 타이어 펑크. 자동차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던 나는 어버버하면서 인터넷에 ‘타이어 고치는 법’을 검색했다. 당연히 원하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타이어를 고치는 게 아니라 가는 거였기 때문이다. 원장님이 손을 다 쓰고 난 뒤에 알아차린 게 함정이었다.
그래, 내가 한 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원장님은 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나를 세웠다. 그러더니만 내 손에 뭔 종이 조각을 쥐어 주었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새겨진. 뭐 하는 곳인지, 상호가 무엇인지도 쓰여 있지 않았다. 수상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도 식상한 비주얼.
그때 바로 명함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질문이다. 나는 용돈이 한참 전에 끊긴 청춘이었으니까. 이 나이씩이나 돼서 용돈을 받아먹는다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곧장 명함에 적힌 번호를 눌렀다. 무슨 실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할 말이 없어서 얼버무리니 원장님께 수화기를 넘기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수화기가 다시 들렸는지 아까 뵀던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기억하신 걸까.
“내일부터 출근하실래요?”
잊을 수 없는 한 마디였다.
*
원장님은 전화를 끊고 내 번호로 주소 한 통을 보냈다. 00구 00로 100. 일은 쉬울 거라는 원장님의 말씀만 믿고 메시지에 적힌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이 건물… 생각보다 으리으리했다. 카페에 미용실에 노래방에 학원. 엘리베이터까지 걸어가는 길도 번쩍거렸다. 수천 번 닦아서 광이라도 낸 것처럼. 덕분에 실컷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면접 볼 때 어리버리하게 굴면 안 된댔는데. 아, 지금은 혼자 있으니 괜찮으려나.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순식간에 3으로 바뀌는 숫자. 역시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짝 걸어나와 복도를 도니 내가 찾던 곳이 있었다. XX학원. 한 층의 반절을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열었더니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감탄사 같은 억양의 욕설이 섞여서 들려왔다. 최대한 소리를 외면하며 데스크 쪽으로 걸어갔다.
“저… 면접 보기로 한 사람인데요. 원장님 계신가요?”
“원장님이요? 네! 잠시만요.”
그때. 원장님께서 걸어나왔다. 그러고는 나에게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XX 씨 맞으시죠? 오늘 오기로 한…”
“네. 면접은 어디서 보나요?”
“아니, 그런 건 됐어요. 바로 조교실로 오시죠.”
“네?”
그리고 10분 후. 조교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방 안. 책상 위에 엄청난 양의 프린트와 문제집이 쌓여 있다.
“쉬운 일이에요. 전부 다 채점하시면 돼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문제집 같은 것과는 진작에 연을 끊은 지 오래란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낙하산으로 주어진 기회를 걷어차는 건 사람도 아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내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당연히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호기롭게 문제집 더미 맨 위에 있는 책을 꺼냈다.
그리고… 첫 장을 펼치자마자 경악했다.
지렁이도 단정해 보일 정도로 대단한 악필이었기에.
세상에 쉬운 일은 많다는 거, 전부 다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