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도 살아 숨쉰다
"그래서 얘네가 전부 다 살아 있다는 거지?"
소년이 내뱉었다. 소녀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물이 가득 찬 수족관을 응시할 뿐이었다. 해파리가 뿜어내는 빛 때문에 우윳빛으로 보이는 곳.
소년은 생물을 보며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언가가 물에 떠다니기는 하는데…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차라리 지나가는 거북이를 구경하는 게 훨씬 더 재밌겠다, 싶었다.
반면 소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해파리를 바라보았다. 몸을 배배 꼬는 소년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녀는 '제발 이 지루한 공간을 탈출하게 해줘'라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소년을 무시했다. 그녀에게 해파리란 살아 있지 않은 듯하면서도 살아 숨쉬는 무언가였다. 꿈꾸는 존재이자 바닷속 부유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생물 그 자체.
그러니까 해파리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지, 암. 소녀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소년이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눈치 챌 거라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소녀의 눈빛이 빛났다.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그가 그녀에게 아무 의미 없는 인간일 뿐이라면… 소년이 여태껏 한 노력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농담을 해도, 손을 슬쩍 잡거나 어깨에 팔을 두르려고 해도 그녀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눈이 해파리를 보는 순간만큼에는 명백하게 생기가 돌았다. 아니, 흔들렸다. 온몸으로 자신은 살아 있다고 말하듯이.
소년은 그 짧은 떨림을 무시할 수 없었다. 새하얗다 못해 생기가 없어 보이는 피부를 가진, 그 어떤 음악을 듣고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달콤한 음식이 있어도 절대로 군침을 흘린 적 없는 그녀였기에.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단 말인가? 소년은 몸부림쳤다. 무엇을 해도 그녀가 묵묵부답이라면 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문제든 척척 풀어내던 그 앞에 닥쳐온 거대한 수수께끼. 소녀는 그런 존재였다.
소년은 반사적으로 뒤통수를 감싸쥐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머리를 싸매는 버릇은 그에게 고질병이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어린아이 같은 습관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있는 앞에서는 자제하려고 했지만… 이 상황에서만큼은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미치겠다. 머리가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보통은 이렇게 머리가 끓어오르다가 차갑게 식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수은주처럼.
수은주라… 소년은 어릴 때 종종 앓았던 열병을 떠올렸다. 끙 소리를 내면 엄마가 차가운 물수건을 가져다주곤 했지. 지금은 돌아가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이건 소년에게 다가온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지금처럼 끙끙대면서 낭비할 순간이 아니었다.
잠깐만, 끙끙대? 설마 그녀가 들었으려나…? 소년은 고개를 휙 돌렸다. 아니나다를까 소녀는 소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흐트러짐 없던 그가 그런 소리를 내다니 놀랍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야 당연했다. 소년은 ‘살아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요상한 존재였으니까. 적어도 소녀에게는 더욱더.
소녀는 소년처럼 흠잡을 데 없는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경멸하는 쪽에 가까웠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결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걸 인간미라고 하는 건데. 왜 살아 있지도 않은 것 같은 소년에게 사람들이 그리 열광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소년이 그녀를 좋아하는 듯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을 때는 더 의아했다. 잘 움직이지 않는 해파리나 좋아하고, 수족관에나 다니는 자신의 어느 구석이 마음에 든다는 건지.
공부도 운동도 잘하지 못하는 그녀는 모든 면이 완벽한 소년의 눈에 차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여야 했다. 그래야만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소녀는 애써 미소 짓지 않았다. 따뜻하게 말하지도 않았다. 소년이 들려준 음악을 '나중에 들을 곡' 목록에 저장한 것도, 소년이 볼일을 본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에 케이크 접시를 단숨에 비워버린 것도 그녀만의 비밀이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돼.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은 잘 풀리는 듯했다. 책상 밑에 숨겨둔 해파리 사진집을 소년이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소년은… 좋아하지도 않는 수족관에 가자고 제안했다. 마음에 두지도 않는 그녀를 위해서. 역시나 걔는 인간미 없는 완벽한 존재야, 소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듣기 좋은 말만 살살 골라서 하다니.
봐봐, 지금도 해파리 같은 건 보기만 해도 시시하다는 듯이 끙끙대기나 하고.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이거 재밌어지겠어. 소녀는 수족관이 충분히 어둡기를 바라며 입꼬리를 한층 더 올렸다. 소년의 눈에는 분명 그녀가 해파리 구경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정작 소녀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때였다. 머리를 쥐어뜯던 소년이 그 자리에 주저앉은 건. 소녀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서 부유하는 해파리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괜찮아?"
"아니… 좀 어지러워서…"
그래, 분명 밤 새고 공부하다가 그렇게 된 거겠지. 학교에서도 안 자고 수업만 듣던 애였는데….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길래 왜 그답지 않은 짓을 골라서 하는 건지. 황금 같은 주말엔 제발 다음 시험을 준비하란 말야, 응? 이번만 일으켜준다….
소년은 소녀가 내민 손을 빤히 쳐다보았다. 머리에 마비라도 온 듯이. 이거 실마리지. 맞지? 분명 이대로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
소년의 눈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해파리 수조 근처 말고는 밝은 곳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소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걔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기라도 하면….
"뭘 고민해? 얼른 일어나."
순식간이었다. 소녀가 소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단숨에 일어난 상황에 소년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오늘부터 1일인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하지 말고."
해파리 수조를 등지고 선 소녀가 피식 웃었다. 소년이 생전 처음 보는 미소였다. 아주 짧은 순간만 존재했다가 사라졌지만….
"뭐해? 해파리 구경은 다 했는데. 재미없지 않았어? 얼른 가자."
소녀가 소년을 재촉했다. 엉겁결에 떠밀린 소년이 다음 수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 투닥거리는 소리가 수족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해파리에게 귀가 있다면 분명 그 소리를 듣고 시끄럽다며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다행히…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 있지 않은 듯한 생물은 수조를 희뿌옇게 채우며 배회할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수조 앞이 하얗게 빛났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