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색과 파란색

세상은 하늘이 파랗다고 말한다

by Nope

새파랗다. 눈이 시릴 정도이다. 먼지 낀 유리창 너머로 봤던 뿌연 광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R 0, G 0, B 100.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색깔. 직각으로 고개를 꺾어도 아프지 않다. 몇 번을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연한 파란색은 무슨, 바다보다 더 깊은 파랑. 그게 내 눈앞에 펼쳐진 하늘이다.

*
사람들은 말한다. 하늘색은 연한 파란색이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색은 영어로는 스카이 블루, 일본어로는 소라색. 그리고 스카이와 소라는 전부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니까. 결국 하늘색은 하늘색이니까 하늘색이라는 셈이다. 어렸을 적 미술 시간, "하늘을 그려보세요"라는 말에 도화지를 온통 누르딩딩하게 칠했다가 뺨을 맞았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왜. 하늘이라고 해서 반드시 하늘색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현실에서 본 하늘은 누렇고, 이곳에서 본 가짜 하늘은 높고 파랗고.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이곳 하늘은 해질녘에는 분홍빛, 해가 뜰 때는 새빨갛게 물든다고 한다. 직접 볼 일은 없겠지만.

치켜든 고개가 슬슬 아파온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려고 할 때쯤 기다렸다는 듯이 새하얀 구름이 지나간다. 구름? 그래, 구름. 구름은 반드시 하얀색일까. 하늘색을 머금고 빛나기도 하는데. 아침저녁에는 주황. 밤에는 자주색. 그리고 지금처럼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질 때는 하양. 맞아. 구름이 가지각색이듯이 하늘도 반드시 한 가지 색일 필요는 없잖아.

그때 태양빛이 눈에 정통으로 내리꽂힌다. 눈을 뜰 수 없다. 햇빛이 섬광처럼 잔상을 남긴다. 섬광, 날카로운 빛. 별처럼 뾰족한. 색깔은 빨강, 노랑, 파랑, 하양. 가장 가까운 별인 태양은 하늘을 비추지. 하늘, 그래. 하늘. 사고가 원점으로 돌아온다. 아니, 파도에 휩쓸려 저만치 밀려간다.

순간 내가 모래사장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닫는다. 바다는 새파랗다. 거울처럼 하늘이 비친다. 동시에 비약일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머릿속에 꽂힌다. 가짜 세상에서 본 가짜 하늘은 파란색. 가짜 바다에 비친 가짜 하늘도 파란색. 진짜 세상에서 본 진짜 하늘은 누런색. 그렇다면 하늘은...

다시, 그 미술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왜 남들처럼 생각하지 않냐고, 하늘은 하늘색이지 않냐고 연신 손바닥을 때리는 선생님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눈물의 색은 투명하다. 바다도 투명하다. 하늘도 어쩌면 투명할지도 모른다.

계속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고개를 숙이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바다는 하늘을 담은 파란색. 파란색은 하늘색. 하늘색은 변화무쌍한 색. 바다는 하늘을 담은...

아니, 파랗다는 말은 취소. 어쩌면 바다는 투명할지도 모른다. 하늘색이 바뀌면 그 색을 고스란히 받아 넘실거리니까. 내가 아는 하늘색은 하늘색이 아니듯이, 파란색조차도 파란색이 아닐지 모른다. 이곳, 0과 1로 이루어진 가짜 세상에 존재하는 파란색은 분명 진짜가 아닐 터. 내 세계관에 예고 없이 몰려온 파란(波瀾)일까. 밀어내야만 할까.

"뭘 그렇게 열심히 생각해?"

순간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흠칫 뒤를 돌아본다. 파란 머리를 한 소녀가 말을 걸어오고 있다. 하늘보다 더 눈부신 색깔에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는다.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코드 블랙. 여자와 대화하는 법 같은 건 하나도 모른다. 발에 힘이 풀린다. 모래가 나를 받아주길 바라며 풀썩 뒤로 쓰러진다.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아, 지금 보는 하늘은 진짜 하늘처럼 뿌연 색. 눈을 질끈 감는다...

*
"야. 정신 차려! 나 여깄어!"

얼굴이 축축하다. 맛을 보니 짠맛이 난다. 내가 기절한 줄 알고 가장 가까이 있는 찬물을 퍼부었나 보다.

"뭔데..."

눈만 끔뻑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할 말이 없어서 하늘에 눈을 고정한다.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은 오묘한 파랑이다. 새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스름하다, 푸르딩딩하다... 파란색을 뜻하는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 보는 광경에는 그중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어쩌면 하나도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나는 안다. 얼굴에 정통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이 너무나 따갑다는 건. 가지고 온 선글라스가 멀쩡하길 바라며 주머니를 뒤진다. 다행히 부서진 자국 같은 건 없다. 갈색 렌즈에 비친 하늘색. 이건 갈색일까 파랑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 너 더위 먹은 줄 알았어!"

그애다. 뭐라고 대답할지 모르겠어서 망설인다. 하늘색은 하늘색이 아니라고? 바다는 파랗지 않다고?

"하늘을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는 유저는 처음 봤어.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말해줄 리 없잖아! 내가 절대...!"

순간 얼굴에 피가 쏠린다.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 이건 더위를 단단하게 먹은 거야. 나는 얘한테 아무 생각도 없어. 없어야 한다고.

"너 얼굴이 새빨개. 진짜 더위 먹었나 봐."

이마에 손을 대는 소녀를 막기 위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왔다. 나 같은 사람은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봤다는 듯.
간신히 고개를 돌려 소녀의 눈을 피한다. 새파란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R 0, G 0, B 100. 불순물 없는 완벽한 파랑.

등 뒤에 닿은 모래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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