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 #1

언젠가 완성할 글

by Nope

“수영장에 물이 없다고? 말이 돼?”

새파랗고 텅 빈 타일 바닥은 오후 3시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진 꽉 차 있었던 물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연일 갱신되는 최고 기온도, 모래와 자갈만 남은 강바닥도,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도 우리를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보루인 물총이 있었으니.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냉수를 가득 장전하고 목표물을 향해 미친 듯이 쏘아대다 보면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순간 따가운 시선이 날아와 박혔다. 아니, 물줄기처럼 차가운.

“너 발에 껌 붙었어?”
“뭐?”
“아니면 더위라도 먹었냐? 35도야, 여기. 수영장에 물도 없는데 왜 멀뚱멀뚱 서 있어.”
“그야 당연히…”
“당연히 뭐. 산 속에 있는 수영장에 오자는 것부터 이상했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수영장은 대부분 도시나 뭐 그런 데 있잖아. 그런데 갑자기 웬-”

잠깐만. 그새 잊어버렸나?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수영장이 어쩌고 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게 누구였는데.

“기억 안 나? 이번 여름에는 수영장에 꼭 가야겠다며.”
“그랬나?”
“벌써 까먹었어? 새로 산 수영복 자랑할 때는 언제고.”
“아… 그랬지.”
“‘그랬지’가 아니라! 워터파크 할인권은 진작에 다 매진이었고, 정가로 사려면 더럽게 비싸고… 공영 수영장이라도 찾으려고 했는데 거기는 물 반 사람 반이라서 싫다며. 그래서 기껏 여기까지 왔건만!”
“그럼 수영장 안 가면 되잖아.”
“난 누구랑 달리 뱉은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라서.”
“야!”

씩씩대는 네 목소리를 뒤로 하고 수돗가로 향했다. 쇠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반투명한 지붕에 은색으로 빛나는 수도꼭지까지 갖출 건 다 갖춘 공간이었다. 적어도 여기서 물총놀이라도 할 수 있겠지. 산, 아니 언덕 위에 있긴 했지만 나름대로 평지였으니까.

천천히 물을 틀었다.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볐다. 역시나 물줄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단수된 거야? 이 뙤약볕 아래서 무슨…

망했다.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대차게 망해버렸다. 강가, 워터파크, 공영 수영장, 아이스크림. 더위를 쫓기 위해 한 노력은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물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그런 걸 하나도 볼 수 없는 상황.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어? 드라마 찍냐!”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짜증을 퍼붓는 너. 올해 여름은 유독 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간신히 언덕을 내려오자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너는 찝찝해하면서도 내 손목을 잡아끌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니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쏟아졌다. 시원하다 못해 온몸이 보송보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잠시. 너는 지치지도 않는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미쳤다. 무슨 소프트콘 하나에 1300원이야?”
“싫으면 먹지 마.”
“그게 아니라…!”
“말조심해. 황금 같은 여름방학 첫 주를 이딴 식으로 보낼 거야?”

그제서야 너는 푹 고개를 숙였다. 그래,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네.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배고프지? 얼른 먹어. 세트 사줄 테니까.”
“좋아. 그럼 나는 통새우모짜렐라와퍼에 패티 한 장 추가.”
“그냥 네 돈으로 시켜라.”
“알았어…. 그냥 통새우와퍼. 너는?”
“내가 알아서 고를 거야.”

당연히 제일 비싼 걸 먹을 거였지만. 내 돈으로 사는 거니 아무도 간섭할 수 없지 않은가. 콧노래를 부르며 키오스크 쪽으로 향했다. 그래, 수영장 같은 데 안 가도 이렇게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여름을 즐길 수 있는데. 바캉스가 별 거냐?

호기롭게 터치스크린을 눌렀다. 너는 통새우와퍼, 나는 이번 달 신메뉴. 조금 불공평해 보이긴 하지만 뭐 어떠랴. 사 주는 사람 마음인 것을. 일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그래, 결제할 차례가 될 때까지는.

주머니에 지갑이 없었다.
그 언덕길에서 흘린 모양이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3화하늘색과 파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