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어떤 일이 발생하면 파생될 수 있는 사건과 일말의 가능성까지도 모조리 상상해 보곤 합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보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깊게 파고드는 거죠. 문제는 가끔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거였어요. 후회와 자책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언제나 최악을 먼저 떠올리는 나쁜 버릇도 함께요.
상상만 해왔던 나쁜 일이 벌어지면 스스로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곤 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그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기시감이자 미래로부터의 신호였던 거라고.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 했냐고. 그 비난이 모여 하나의 문장을 이뤄 화살처럼 박혀 버렸습니다.
“내가 완벽했다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이 들었어요. 만약 나의 상상과 가정이 미래로부터의 신호라면 ‘미래의 나’는 어째서 그런 신호를 던지는 걸까요? 실수투성이인 과거의 내가 미운 걸까요? 비난하려는 걸까요?
아뇨, 그럴 리가 없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건 타인도 그 누구도 아닌 ‘지금의 나’니까요. 애초에 미래의 나로부터 온 경고 따위는 없었어요. 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증거만이 존재했어요.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미래로부터의 무서운 경고 따윈 잊고 마음을 놓을 수 있도록, 가장 듣고 싶었던 말들을 모았습니다.
상념과 자책으로 지새우는 그 긴 밤들이 네 탓이 아니라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 이야기에 정답은 없다고, 네가 떠올리는 그 수많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절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완벽을 꿈꾸는 대신 온전한 행복을 찾아내라고. 정점 대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들려주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완벽주의자의 우울>에 담았습니다. 너를 향한 글이자, 나를 위한 글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죽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울증 이후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어요.
살아있는 지금, 이제 더는 무엇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애썼던 날, 아팠던 날, 멈추었던 순간과 눈물로 지새웠던 날까지도요. 그 어떤 날도 헛되지 않았어요. 전부 의미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전하고 싶은 것들을, 최선을 다해 전했기에 아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나와 너에게 이 글이 닿기를 바랄 뿐, 당신 또한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치료한다는 건 견뎌내는 일이었습니다. 그건 삶을 살아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쉽고, 또 그래서 어렵습니다. 매번 잘 풀리지 않았고 생각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비슷할지 모르지만 괜찮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온전합니다.
사랑하는 나, 나의 너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모든 여정을 읽어 준 당신의 다정함에 감사를. 혹시 다른 어둠을 헤매고 있을 당신에게는 기도를 보냅니다.
이제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저 행복하세요. 다시 뵙는 날까지 부디 무탈하세요.
2026년 4월,
빛 가득한 어느 한 낮,
온전한 이가 오롯할 당신에게
<완벽주의자의 우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막으로 넘어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26년 5월 첫째주 새로운 글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