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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Mar 26. 2022

우리는 열심히 싸웠다!

그리고 제발 윤석열 정권이 실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선 결과가 발표되는 시간에 난 브런치 글을 쓰고 있었다. 표 과정은 쫄깃했고, 1프로씩 개표율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한 줄 한 줄 타이핑하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그때 브런치에 쓰던 글은 내가 왜 1번 후보를 지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후보의 외모와 목소리를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가정환경과 연결 지어 판단하고, 공약과 그간 업적 따위는 들여다보지 않을까?'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나 또한 2번 후보의 공약을 깊이 보지 않고 연설문에서 보인 준비 안되고 독선적인 모습만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 4시가 다 되었을 때 브런치 글은 내가 지지하는 이유에서 멈춰있었고, 화면에서는 1번 후보는 승복연설을 하고 있었다. 난 울기 직전이었고, 잠깐 잠들었다 좀 전에 깨어난 남편은 상대방 지지자들의 손가락을 욕하고 있었다.




 1번 후보가 그간 성남에서 해냈던 성과나 다시 지지하게 된 이유를 대구에 사는 보수적인 친정 식구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설득하는 것을 보고 남편이 너무 과몰입 아니냐며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였던 19대 대선 때 이렇게 했었나? 그 이전 18대 대선 때에는? 생각해보면 항상 열심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 참여 방법 중의 하나가 선거가 아닐까? 그래서 내 한 표는 소중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처럼 두 후보 모두 확정되지 않은 비리와 연이은 폭로들, 말실수 등으로 가득했다. 어느 후보 하나를 콕 집어서 좋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당의 1번 후보는 개혁적인 성향으로 당내에서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권리당원 중에서도 1번 후보라서 상대당의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2번 후보는 배우자의 학력, 경력 위조와 장모의 비정상적인 재산 증식, 그리고 서민의 삶과는 전혀 거리가 먼 당사자의 모습이 계속 이슈화되었다. 그리고 강골 검찰의 이미지가 영화 '더 킹'에서의 권력 위에 놓인 검찰 카르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해보거나, 지역 온라인 카페, 혹은 SNS상에서 올라오는 각자 자기 후보의 지지글은 나름 공약 위주의 것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2번 후보만 빼고. 선거 전날까지도 2번 후보의 정확한 공약은 알 수 없었다. 언론에서도 공약 내용보다는 후보의 언행이나 실수 위주 장면들만 보여줬다. 거기에다가 선거 유세에서 후보가 외치는 것은 1번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와 현 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번 후보의 지지율은 대선 기간 내내 50프로에 가까웠고 항상 여당 후보를 앞질렀었다.

 그래서 2번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글을 찾아보았다.

 '현정권을 심판해야 한다, 1번 후보는 형수한테 막말을 한 욕쟁이다, 1번 후보는 인상이 더럽다, 1번 후보는 무식하고 천박하다, 2번 후보는 선량하게 생겼다, 2번 후보는 당당하다, 2번 후보는 귀하게 자란 것 같다, 부동산 정책을 바로 잡고 내 집값을 올려줄 거다, 여가부 폐지... 등', 거기에 더해서 1번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들. 물론 1번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2번 후보의 말과 행동을 희화화시키면서 이슈 되고 있는 처가의 비리 정황과 배우자의 허위 경력 등을 막말로 비난하면서 공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공약이 뭐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고, 상대방의 공약을 진지하게 확인해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상대방의 공약집을 읽어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만을 이슈화 시키고 있는 언론들의 탓도 있겠지만 자극적인 컨덴츠만 찾는 유권자들의 선택도 원인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부터도 2번 후보에 대해서는 공약을 직접 찾아볼 생각은 안 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내 한 표가 민주국가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 참여 중의 하나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팬시 가게에서 물건 사는 것처럼 생각한 것은 아닐까? 물건을 살 때는 겉모습을 보고, 내가 원하는 겉모습을 가진 물건이 있으면 그것만 들었다 놨다 하고, 앞뒤를 확인하고 직접 사용도 해보면서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두 사람을 뽑을 때 외모가 아름답고 몸매가 좋다고 일의 능력과 상관없이 뽑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선이 끝나고 TV에서는 그간 잘 안 보여주던 2번 후보의 공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허위경력과 학력위조가 분명해 보이는 배우자의 죄는 사라지고 둘의 연애사나 애완견들의 모습 위주의 뉴스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들을 사라지게 만든 광화문 집무실 공약이 등장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은 19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탄생한 대통령이 촛불시민들 옆으로 와서 일하는 정권


 현 정권이 꿈꾸었던 모습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민하고 검토했지만 광화문으로 집무실을 옮겼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득 보다 잃을 수 있는 실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계산할 수 있는 막대한 비용과 국민들이 느낄 불편의 양을 고려했을 때 그냥 청와대를 일할 수 있게 바꾸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집무실을 비서동으로 옮기기는 것을 선택했고 비서관들과 모두 함께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였다. 현정권이 시작되면서 청와대의 춘추관 앞길에서 시작해서 북악산 둘레길까지 순차적으로 개방했다. 청와대도 개방해서 예약하면 주중이나 주말 경내 관람이 가능하고 운이 좋다면 식사 후 산책하는 비서관들이나 대통령을 만나서 사진 찍거나 인사를 할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는 마음만 먹으면 놀러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현 정권은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폐기하면서 공약을 만들 당시에 현실적인 내용은 검토하지 못하고 이념에 치우쳐서 결정했음을 사과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당선자는 청와대가 대통령에 쏠려진 무한 권력의 상징이고 구중궁궐이 이미지가 강한데 이곳을 국민들에게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하고 경복궁과 고궁박물관에서 북악산으로 마음껏 누리게 하겠다면서 강하게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청와대 이전은 찬성이다. 정확히는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 국민과 더 가까이하기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하려다 못한 공약을 완성한다면 오히려 환영해야할 일 아닌가. 실제로 현 정권의 대변인이나 첫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환영의 뜻을 밝히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과정이다. 모든 정치가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개발을 이뤄낸 것은 사실이나 4.19를 통해서 획득한 민주주의 씨앗은 흙속에서 썩어야 했다. 민주주의의 싹을 틔워보고자 했던 많은 인사들이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했다. 인권은 철저하게 말살되었고, 지금 모든 갈라 치기 정치의 시작인 전라도-경상도 지역주의를 만들어서 선거에 이용했으며 부자들과 군인들의 권력을 키워주었다. 비록 경제 개발, 새마을 운동의 성공 등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과가 너무 커서 공을 거론하기도 민망한 꼴이다.

국망부로 옮긴 대통령 집무실과 용산 공원의 조감도, 그러나 실제 건물과도 많이 다르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당선자가 그런 꼴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당선자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청와대를 완전히 개방하는 날짜를 취임식인 5월 10일로 못 박은 것이다. 대한민국 정권이 만들어지고 대통령이 탄생한 이후로 6.25 전쟁 때 말고는 굳건히 민주주의 역사의 중심에서 자리 잡고 있던 청와대다. 이전을 한다고 해도 검토하고 계획하고 동의를 구하고 움직여야 한다. 절차상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지금 인수위원회나 당선자는 결과를 정해놓고 몇십 년간 나름의 최적화 과정을 거쳐온 시스템을 설득이나 이해를 구하는 절차 없이, 기획부동산업자가 사기 치기 전 브리핑하듯이 '그냥 너네 좋을 거야.' 식으로 통보를 한다. 불통이다. 이것이 독재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게도 청와대 터가 안 좋아서 무당이 그곳에 들어가서 자면 급살을 맞는다, 탄핵을 당한다, 혹은 구속을 당한다 등등의 예언을 해서 하루도 절대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한낱 무당 말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인신공양이었다, 대통령은 무당과 굿을 하고 있었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소문이 많았다. 그때도 '왜 아이들이 살아 있을 때 해경은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리면 제대로 된 처벌을 해야 하고 실수면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말해야 하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흐지부지 되어버려서 결국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은 것이 그런 것들이었다.  




  용산 국방부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구체화되면서 안보 공백과 비용이 문제가 되었다. 국방부는 쪼개져서 여러 건물로 나뉘어야 하고 기존 건물에 있던 기관들은 또 다른 건물로 연쇄적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선자 측은 단순히 이사비용만을 계산해서 발표했고 일부 언론과 관련 인사들은 기존의 시스템들의 이동 비용과 연쇄로 움직이는 다른 기관들의 이전비용까지 고려해서 조 단위의 비용을 예상했다. 국방부가 50일 정도에 동시에 이사를 해야 하니 안보 시스템이나 국가위기관리 시스템 등을 옮기고 테스트할 시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예비비를 써서 이전하겠다는 인수위에게 대통령은 현재 예비비는 재난구조나 비상시를 위한 것이므로 사용 불가하며, 5월 10일 새벽 0시까지 국방의 구멍 없이 국방부는 현재 통수권자의 명령을 받아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식적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조급해하지 말고 우선 청와대로 취임을 하고 일정을 정해서 좀 더 동의를 구하고 설득을 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천천히 청와대를 나가면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지금 당선자의 의지와 추진력이면 흐지부지 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당선자는 서초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하는 대통령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고민해보지도 않고 본인의 결정만 고집하고 있다. 절대로 청와대에서 하루도 잠들지 않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인수위의 책정한 이전비용조차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고 발표되는 금액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 잘 만들어진 국가위기센터는 당분간 비상시에 움직이는 미니버스 크기의 국가 지휘통신차량으로 대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민과 같이 할 것이라는 용산 공원은 아직 미군으로부터 반환되지 않은 땅도 있고 협상해서 반환받고 오염정화기간을 거치고 나면 빨라야 6~7년 후에야 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때까지 국방부는 조감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국민과 가까이 있는 집무실이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우려 섞인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반대 여론이 높아지니 인수위 측은 공원 일정을 앞당기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관리 시스템은 국방부의 선하나 만 바꿔 꽂으면 된단다. 미군 부대로 사용하던 땅의 오염 정화 기간은 심각하게 고려되지도 않는다. 지금도 곳곳에서 매립한 폐유가 흘러나와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해결해야 할 이슈인가? 정말로 급살 맞는 것을 점괘로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서초에서 종로까지 출퇴근하는 동안 경호처는 무슨 죄이며, 같은 시간 같은 도로에서 출근 중이던 시민들은 어떡할까. 강원도에는 역대 최악의 산불로 인해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2년이 넘게 계속된 코로나 방역으로 피해 입은 소상공인 살리기가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제발 상식적인 의견 통합과정을 거치고 어느 정도의 설득과 이해를 구한 다음에 결단 내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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