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이사를 했다. 사실 임대차 보호법이니 뭐니 하면서 세입자의 권한을 보호해준다고는 하지만 막상 집에 들어와서 살겠다는 집주인을 막을 순 없었다. 2년 반만 더 살면 내 집으로 이사 가는데... 분당이고 서울이고 집이 여러 채 있는 주인이라서 당연히 연장해줄 거라 믿었는데, 고위공무원이 특공으로 분양받고 나서 실거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나 보다. 딱 2년 5개월만 연장해주길 바랬는데 결국 잠깐이라도 집주인은 들어와서 살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새 전셋집을 구해야 했다. 전셋값은 터무니없이 올랐지만 운 좋게도 단지 내에서 조건에 맞는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고 이사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4년 전에 이사할 때도 단지 내 이사였는데 그때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이삿짐센터는 견적을 보러 와서 가구들만 보고는 8톤 정도의 견적을 얘기했었다. 아마 5톤 차량 1대와 단지 내 이사이니 자신들이 중간중간 옮길 계획을 짰었나 보다. 그러나 숨은 자잘한 짐들이 많아서인지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아침 7시에 이사를 시작해서 저녁 8시가 돼서야 새집으로 짐을 다 올렸다. 그리고 박스의 짐을 대강 풀어놓기만 하고 가버렸다. 짐이 많았다는 이유로 추가금액은 더 받고서는.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맘 카페에 소문난 업체에 연락했다. 견적을 보러 온 담당자는 한번 훑어보고는 가구 같은 큰 짐은 많지 않지만 책과 작은 짐들이 많아서 10톤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꼭 이사하기 전에 많이 버리라고 당부까지 했다.
그래, 버릴게 많긴 하지. 21살에 기숙사를 나와서 자취를 하다가 결혼을 하고 주말 부부로 시작한 덕분에 새롭게 신접살림을 마련하거나 하진 않았었다. 그리고 어차피 아이들이 태어나면 새로 가구를 맞추어한다는 선배들의 말에 가능하면 자취할 때 쓰던 가구, 그릇들은 그대로 썼고 침대만 새로 샀었다. 그리고 1년 정도 시가에 들어가서 살다가 나오면서 시가에서 쓰던 오래된 코렐 그릇들이 더해졌고 다시 분가하고 복직하면서 TV와 냉장고, 에어컨 정도가 바뀌거나 추가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내가 대학생 시절 자취하면서 쓰던 그릇들도 남아 있었고 결혼 전 쓰던 책상도 남아 있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번엔 정말 많이 버려야지 각오를 했다. 그리고 먼저 드레스룸을 열었다. 드레스룸에는 최근 5년 동안 안 입은 옷이 절반 이상이다. 살 빼고 입어야지, 몇 번 못 입은 브랜드 옷인데 팔까? 그런 고민들로 버리지도 못하고 살쪄서 입지도 못하는 옷들이다. 결혼하기 전에 입었던 정장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체형이 바뀌어 한 번도 입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했다. 남편 옷도 마찬가지였고 아이들의 작아진 옷들도 물려주기에 멀쩡해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천들이 날깃날깃했다. 딴생각이 들기 전에 50리터가 조금 넘는 큰 봉지를 가지고 와서 막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6 봉지가 나왔고 헌 옷을 사가는 업체가 가져갔다. 2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주고. 아이들의 책상과 장난감 등등 저학년 때 쓰던 물건들은 당근 마켓에 내놓았다. 그나마 멀쩡한 외투 같은 겉옷들은 어린 사촌동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박스에 넣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면서 마지막 서재방으로 왔다.
서재방에는 남편과 내가 대학교 때 보던 전공책들, 컴퓨터 관련 서적들, 대학원에서 만들었던 연구 결과물들, 논문들이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고 오래된 CD들도 있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하고 몇 년 회사 다니다가 큰맘 먹고 샀던 책상도 있었다. 이 책상은 올해로 18살이 되었다. 아직도 튼튼해서 상판의 필름이 살짝 일어난 것 말고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너무 크고 무겁다 보니 드림을 해도 가져갈 사람도 없고 서재방을 크게 차지하고 있어서 버리는 게 정답이었다. 4년 전에도 버리려다가 그놈의 추억 때문에 실패했었지만, 이번에는 서재방을 작게 나누어서 절반을 캠핑장비를 넣을 공간으로 쓸거라 사실 책상이 들어갈 공간도 없었다. 무조건 버려야 하니 4칸의 책상 서랍들부터 하나씩 비워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칸을 열어보니 여러 가지 문구류와 나의 지나간 명함들이 나왔다. 선임, 책임, 모바일 개발, SW 개발그룹 등등 직책과 부서가 바뀔 때마다 바뀐 명함들이 한통씩 있었다. 많아야 일 년에 두세 번, 업체 사람들하고 업무 회의를 하는 게 전부였던 개발자여서 명함은 자주 가는 식당의 명함 이벤트용으로나 사용했었다.
명함은 버리기가 참 그렇다. 예전에는 하나하나 가위로 잘라서 버린 적도 있었지만, 내 이름 석자가 박혀있는 것을 버린다는 것이 참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듯한 불편함. 그래도 이번에는 더 많은 생각이 들기 전에 불편함을 누르고 쓰레기 봉지에 넣어버렸다. 역시 버리기는 생각하지 않고 과감해져야 한다.
다음 서랍을 열었다. 각종 전선들이 가득했다. 전선들 중에서는 챙겨놔야 하는 타입의 선들도 있어서 사용하는 선들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엉켜있는 것들을 풀고 충전 케이블은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그러다가 서랍 안에서 오래된 mp3 플레이어와 아이팟이 나왔다.
아이리버 mp3와 아이팟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에 항상 나의 출퇴근을 같이 했던 기기들이었다. 특히 아이팟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고도 한동안 사진과 음악 파일을 저장해서 가지고 다니던 것이라 함부로 버리지 못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충전도 안되고 용량도 너무 적기도 하고 웬만한 음악은 휴대전화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고 있으니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십 년 가까이 서랍 속에 묻어두었던 mp3 플레이어들은 과감하게 쓰레기 봉지로 넣었다.
이번에는 CD를 정리하다가 또 하나의 오래된 추억을 발견했다. 한때 가수 박정운과 박준하, 조정현, 김민우 4명이 같이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낸 적이 있었다. 난 박정운과 박준하의 팬이었고, 조정현과 김민우의 노래를 좋아했었다. 당시에는 박정운 팬클럽에 가입했었고, 우리는 옛 스타의 컴백을 환영했다. 그때는 전국의 공연을 따라다녔었다. 심지어 대전에서 콘서트를 할 때는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공연을 해서, 대기실에서 오빠들의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내 닉네임을 기억하던 나의 스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거룩하다고 사인에 남겼다.
한참을 보다가 이젠 잘 듣지 않는 CD인데.. 버릴까 고민했다. 고민하면 못 버린다는데 역시 추억은 꼬리를 물고 나왔다. 결국 나의 스타가 라디오 방송 중에 나의 닉네임을 보고 모르는 척 사연을 읽어주고 선물을 꽂아준 것도 떠올랐다. 감사한 마음에라도 이 CD는 보관해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책장에 꽂혀있던 오래된 한지로 된 박스 하나. "아라한 장풍 대작전" DVD.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 만든, 또 좋아하는 장르인 판타지 무협물이라서 극장에서도 보고 나서 출시되자마자 사버린 '한정판' DVD였다. 정말 공들여 만들었다. 박스는 한지로 진짜 비급이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고 박스 안에는 OST와 영화 DVD 그리고 사진들과 엽서들이 들어있었다. '한정판'다운 구성이었다. 그런데 이제 집에는 DVD 플레이어가 없다. 지금도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VOD로 가끔 찾아본다. 박스를 열고 사진을 찍고는 한참 고민에 빠졌다. 버려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내가 미니멀리스트였다면 당연히 버렸을 텐데. 난 그냥 맥시멀 리스트다. 이번에는 웬만하면 다 버려야지 다짐했지만 결국 또다시 내가 담은 추억의 크기가 버려도 될만한 크기인지 재고 있었다.
정리를 시작하면서 추억이 하나둘씩 새어 나오더니 계속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추억이 이겼다. 귀한 한정판 DVD는 다시 책장으로 돌아가 마치 무림 비급 인척 자리 잡았다.
거의 일주일을 버리고 정리했다. 50리터짜리 쓰레기 봉지를 스무 장 가까이 썼다. 그래도 여전히 다 버리지 못했고, 이사 올 때 다시 새집에 자리 잡은 물건들이 있다. 어머님이 물려주신 브로치와 액세서리가 있고, 아이들의 스케치북들이 있다. 여전히 못 버리는 오래된 CD들과 책. 사진, 현상한 필름, 전시회 팸플릿, 티켓들. 이삿짐을 싸기 전에는 다 버려야지 했던 물건들이 다시 그 속에 담긴 추억의 크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고, 깔끔한 미니멀리스트의 집을 꿈꿔봤지만 그러기에 물건에 담아둔 추억이 너무 커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 추억들이 옅어지면 그때는 정리할 수 있겠지. 그때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꿔봐도 될래나 싶지만 아마도 다른 추억을 쌓은 물건들이 가득할 테지. 나는 맥시멀 리스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