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서사의 시작
2000년 전, 거대한 로마 제국의 시선이 닿지 않는 동쪽의 작은 속주 유대. 이곳에 한 청년이 혜성처럼 나타나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0.001%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 없는 한 청년의 짧은 생애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가르침은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시작해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그 과정에서 하나의 강력한 '의도'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예수는 신이다"라는 믿음이다.
이 거대한 서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나는 이것이 실제 사실과 후대의 의도가 뒤섞인, 잘 짜인 이야기의 결과물이라고 감히 추측한다. 이 글은 그 거대한 이야기의 껍질을 한 겹 벗겨내고, '인간 예수'라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소설적 상상력이자 합리적 추론의 시작이다.
신격화의 서막: 기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성경에는 예수가 행한 수많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병든 자를 고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려냈다고 전해진다. 베드로와의 첫 만남 역시 극적이다.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면 많은 고기를 잡을 것이라는 예수의 말에 베드로가 순종하자 만선의 기쁨을 누렸고, 이에 감복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하지만 잠시 2000년 전으로 돌아가 상상해 보자. 당시 사람들의 눈에, 뛰어난 통찰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한 청년이 베푼 치유의 손길, 혹은 자연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는 어떻게 보였을까? 작은 기적, 병세의 호전과 같은 사건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던 이들에게는 엄청난 충격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수한 경외감에 "예수를 신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차 부풀려지고 드라마틱하게 각색되지 않았을까? 작은 치유의 기적이 '죽은 자를 살리는' 신의 권능으로, 어부의 경험을 뛰어넘는 조언이 '자연을 지배하는' 신의 능력으로 확대 해석된 것은 아닐까? 이는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한, 2000년 전 사람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서사 장치였을 것이다.
요한복음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의도'
이러한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 예는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 확실한 예를 하나만 들어보겠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이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오직 몇몇 여인들만이 멀리서 고통스러운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유독 요한복음에만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십자가 아래, 슬피 우는 여인들 곁에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바로 요한 자신이 있었다고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며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이 장면은 왜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을까? 이는 요한이 예수의 '후계자'임을 공인하는, 매우 의도적으로 삽입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훗날 요한을 따르던 공동체가 자신들의 스승이자 지도자인 요한의 권위를 예수에게서 직접 부여받은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스승을 향한 존경심과 공동체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열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드라마인 셈이다.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우리는 지금 사실과 의도가 뒤섞인 거대한 이야기 덩어리를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는 그 확실한 기준점이 바로 "예수는 인간이다"라는 대전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수는 신'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과 가르침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후대에 덧씌워진 신화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의 진짜 메시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신'이라는 믿음은 후대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강력한 '의도'다.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 그 의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 예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하나씩 파헤쳐 보고자 한다. 이것은 신성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예수의 위대함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