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했던 어린 예수

친밀한 부자관계, 목수의 아들이라는 상상에 대하여

by We Young

예수가 목수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아버지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기에, 아들인 예수 역시 그 뒤를 이어 목수 일을 했을 것이며, 부자 사이는 매우 돈독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나사렛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나무나 다듬던 목수였다는 통념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근거를 들어보자.

첫째, 예수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단순히 글을 아는 수준을 넘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이 사용하던 희랍어나 라틴어에도 능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목수 일만 했다면, 어떻게 그 정도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을까?


둘째, 아버지 요셉과의 관계다. 요셉은 예수의 친부가 아니다. 마리아가 정혼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아이를 임신했슴에도 요셉이 받아들인 것이다. 성경의 이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요셉과 예수가 이상적인 부자 관계였을 것이라 상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말로 사이가 좋았다면, 예수의 입에서 의붓아버지인 요셉에 대한 언급이 한 번쯤은 나왔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예수는 요셉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다. 이것이 비약으로 들리는가?


이러한 생각은 다음 사례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성경에는 예수가 제자들과 전도 활동을 하던 중,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온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제자가 "선생님, 모친과 형제가 오셨습니다"라고 알리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마가복음 3:33)


이 구절은 그가 가족과 그리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 중 하나다. 친어머니, 형제들과도 거리를 두었던 예수가 친부도 아닌 계부와 유독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는 상상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일까?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예를 살펴보자.

성경 어디에도 예수의 어린 시절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누가복음에서만 유일하게 12살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예수의 가족이 유월절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루가 지나서야 예수를 잃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아들을 찾았더니, 성전의 학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리아가 꾸짖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명확해 보인다. 12살에 부모를 잃었다 찾은 아이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들고, 그 아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닌 '신의 아들'이었음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부모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부분에 주목한다. 사실 이 이야기에는 허점이 많다. 당시 12살은 성인식을 치르는 나이다. 아마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며칠이 걸리는 그 먼 길을 간 것도 성인식을 위함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12살이 어리게 보이지만, 15세 전후로 결혼하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12살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그런 나이의 아이를, 그것도 이제 막 성인이 된 예수를 부모가 잃어버렸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집으로 가는 길에 하루 동안이나 예수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마리아에게는 예수 말고도 요셉을 통해 낳은 자녀가 다섯이나 더 있었으니,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남이자 보통의 아이가 아닌 예수를 하루 동안이나 잊고 길을 갔다는 말인가?


여기서부터 소설을 한번 써보자.

이 모든 것에는 처음부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12살이 되어 성인이 된 예수를 데리고 그 먼 예루살렘까지 간 것은, 처음부터 그를 예루살렘에 '두고 오기 위한' 계획이었을 수 있다. 이제 예수는 성인이 되었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예루살렘에 두고 오려 한 이유는, 그곳의 누군가에게 그를 맡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왜 예수의 부모는 그를 두고 오려 했을까? 앞서 말했듯 예수의 가족은 그와 친밀하지 않았다. 요셉이 자신의 친자식을 여럿 낳으면서 예수와의 사이는 더욱 멀어졌고, 마침내 그가 성인이 되자 예루살렘의 아는 사람에게 보내려 했다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추론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예수는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이런 어색한 가족사를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로 각색하여, 그의 어린 시절마저 신격화했던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예수는 어린 시절 철저히 고독했고 부모는 그를 멀리하려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가 이처럼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다음 글에서 다시 밝혀 보이겠다.

작가의 이전글예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