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이면 요셉의 가족도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의 순서는 찬양과 기도를 하고 경전을 낭송하는 것이었다. 낭송자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앞에 나와 낭송을 했다. 예수도 나이가 되어 참여하게 됐는데 그가 낭송 할 때면 다른 누구보다도 목소리가 깨끗하고 우렁차서 청중이 감탄하곤 했다. 또한 긴 문장도 한번 보더니 눈 감고 암송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에 어른들이 예수를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저렇게 똑똑한 아이를 이런 시골구석에서 살게 하다니 아깝도다.”,
“그러게 말이야. 여기 살다 보면 기껏해야 제 아버지 따라서 목수밖에 더 되겠나?”
어느 때는 이웃들이 예수의 인물됨이 아까운 나머지 요셉에게 다가와 말하곤 했다.
“예수가 명석하니 이런 촌구석에서 썩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멀리 유학을 보내어 큰 인물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요셉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는 예수가 10살이 넘어, 마리아와 맹세한 약조를 지키고자 하였지만 그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먹고사는 데 쓰느라 그가 모아 놓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 가지고는 예수를 큰 도시에 유학 보낼 수가 없었다.
마리아는 더 이상 예수를 이 시골에서 썩게 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예수를 어떻게든 도시로 보내서 교육을 받게 하려 했다.
“요셉, 예수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어요. 이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예수를 엘리사벳 언니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엘리사벳이라면 전에 말하던 사촌 언니 말이오?”
“네, 그 집은 명문가의 집안이고 예수가 교육받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하지만 친족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허락하겠소? 우리가 그들에게 베푼 것이 없는데…”
“아마도 허락할 것입니다. 그 집은 저에게 빚진 것이 있습니다.”
유월절이 돌아왔다. 이집트에서 고생하던 조상들이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명절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각자 양을 잡아 제사를 올렸는데 하루에 잡는 양이 수만 마리였다. 요셉과 마리아도 나사렛을 떠나 꼬박 일주일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성전 앞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요셉이 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음식을 준비하는 틈을 타서 마리아는 예수의 손을 잡고 성전 근처 제사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사가랴를 어디서 찾나?’
마리아가 분주히 둘러보았지만 사가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가랴 제사장님!”하고 누군가가 불렀다. 그 소리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소녀가 주는 물건을 받아 들고는 걸어가려고 했다. 마리아는 그가 사가랴임을 알아보고는 그 앞에 다가갔다.
“아니… 너는 마리아 아니냐?” 사가랴가 놀란 표정으로 마리아를 쳐다봤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형부.”
“그래. 참으로 오랜만이다.”
사가랴는 마리아의 손을 쥐고 있는 아이를 쳐다봤다.
“이 아이가… 예수냐?”
마리아가 “네.”하고 대답하자, 예수도 인사를 했다.
“예수야. 지금 몇 살이냐?”
“12살입니다.”
사가랴는 예수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맑은 목소리에 심장이 떨렸다. 예수를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본 듯 부정(父情)이 순간 끓어올랐다.
“형부. 잠시 할 얘기가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기다리라고 하고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사가랴와 대화를 시작했다.
“예수가 어떤 인물이 될지 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죠?”
“음… 이스라엘의 큰 인물이 된다는 그 말 말이냐?”
“그래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셉과 저는 예수를 양육하기에는 너무 부족해요.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먹고살기도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형부께서 저 아이를 데려가서 큰 인물로 만들어 주세요.”
뜻밖의 요청에 사가랴는 당황스러웠다.
“마리아… 마리아의 심정은 이해가 되나…지금 당장 내가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이구나.”
사가랴의 말이 끝나자, 마리아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그동안의 고통과 한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애써 참아 내며 눈물을 삼켰다.
“형부는 저 아이의 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너무도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나요?”
마리아의 다그침에 사가랴는 아무 말을 못 했다. 그도 예수를 보면서 자기를 닮은 얼굴에 놀라던 참이었다. “형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발 마음을 돌려 예수를 남이라 생각지 마시고 그를 위해 아버지의 도리를 다해 주세요.”
그렇게 말을 남긴 채 마리아는 뒤돌아서 예수에게로 향해 갔다. 마리아는 예수의 손을 잡고 가족들의 처소를 향해 걸어갔다. 사가랴는 먼발치에서 그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는 모습을 끝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제사장들이 제물을 바치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가랴는 제사를 끝내자마자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사벳이 유월절 음식들을 만들다가 말고는 나와서 놀라며 물었다.
“어인 일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아직 행사가 다 끝나지 않았을 텐데요.”
“오늘 당신과 긴히 할 얘기가 있소. 방으로 갑시다.”
방으로 들어온 엘리사벳은 남편의 표정이 심각함을 느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왜 그리 표정이 어두워요?”
사가랴가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열고 말했다.
“오늘 마리아를 만났소.” 남편의 말에 엘리사벳이 사뭇 놀라며 대답했다.
“그…그래요?” “예수가 벌써 12살이 되었더군.”
“그렇겠죠. 우리 아들 요한과 나이는 거의 같으니…”
“마리아는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 큰 도시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 같소.”
엘리사벳은 남편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부인, 나는 사실 마리아를 그렇게 보내고 죄책감으로 힘들었소. 우리 편해지자고 아이를 가진 여인을 내보내서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 때문에 말이요. 그동안 마리아가 예수를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소? 아이가 이제 다 커서 큰 도시에 나와서 배우길 희망하니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소.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마음의 빚을 더는 것이 될 것이오.”
엘리사벳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그러니까 당신 말씀은 예수를 우리 집에 들여서 그 아이의 양육을 우리가 책임을 지자는 말인가요?”
“그렇소. 그 아이가 분명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소? 요한이 그의 앞길을 예비할 인물이 될 것이고 말이오. 그러니 예수를 우리 집에서 키워 그들을 훗날 이스라엘의 큰 인물들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엘리사벳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마음으로는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딱히 반대할 명분이 지금 당장엔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사가랴는 마리아를 만났다.
“어제 내가 엘리사벳과 의논하여 예수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그리 알라.”
“그래요? 고맙습니다.”
“나는 해야 할 행사가 많아서 가 봐야 하니,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 앞에 아이를 데려다 놓아라. 종을 시켜서 집으로 데려가게 할 것이다.”
마리아가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예수에게 돌아왔다.
“예수야. 잘 들어라. 엄마가 전에도 너에게 얘기했잖니? 너는 나사렛에서 평생을 살 것이 아니라 더 큰 세상에 나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어제 만났던 사가랴 제사장의 집안은 예루살렘에서 제일 유명한 가문이다. 너도 그가 우리의 친족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너를 어여삐 보시어 너를 양육하려고 하신다. 그러니 너는 이제 그 집으로 들어가서 교육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수는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는 침착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손을 잡고는 예루살렘 성전 앞까지 같이 갔다.
“예수야. 그곳에서 잘 배우기를 바란다. 엄마는 다음 명절 때 또 올 것이니 그때 다시 보자.”
마리아는 예수가 입을 옷가지 보따리를 쥐여 주고는 눈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마리아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혹시 예수 도련님 되십니까?”
“네, 제가 예수입니다.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까?”
“아니오. 그게 아니고 저는 엘리사벳 안주인께서 보낸 종입니다. 이걸 드리라고 하셔서...”
엘리사벳의 종이 보따리 하나를 예수에게 건넸다.
“이것이 무엇인가요?”
“이것을 도련님의 어머니께서 보시면 아실 거라 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미 떠나셨는데요.”
“떠나셨다고요? 아직 행사가 다 끝나지 않아서 내일 떠나시는 줄 알았는데요?”
“아니에요. 나사렛으로 가는 무리가 오늘 떠난다고 하여 같이 가셨습니다.”
그 말에 엘리사벳의 종은 “아뿔싸!”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한동안 안절부절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지 예수에게 말했다.
“그러면 도련님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말을 빌려 타고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엘리사벳의 종은 말을 달려 나사렛 무리를 찾아 나섰다.
엘리사벳의 종이 말을 달려 무리를 발견했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묵어간다는 숙소들을 탐문하여 어렵게 요셉의 가족을 찾아냈다. 종이 마리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보따리를 건넸다. 마리아는 그가 준 보따리를 풀어 보았다. 풀어 보니 상자가 있었고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주화들로 가득했다. 주화 위에 서판 하나가 있었다. 엘리사벳의 편지였다.
‘마리아, 미안하다. 예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대신 돈을 보내니 이것으로 그 아이를 교육하라.’
글을 읽고 난 후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한참을 울더니 눈물을 닦고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예수, 예수를 찾으러 가야겠어요. 차가운 성전 바닥에서 혼자 외로이 기다리다가 밤을 새우고 있을 거예요. 빨리 갑시다.”
요셉이 마리아를 붙잡아 앉히며 말했다.
“마리아, 진정하시오. 지금은 깜깜한 밤이오. 지금 나갔다가는 위험하오. 대신 저 종에게 돌아가는 길에 예수를 보거든 내일 우리가 간다고 전해 달라고 합시다.”
엘리사벳의 종이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왔을 때 예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종은 너무 늦은 밤이라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사가랴는 행사를 다 마치고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엘리사벳에게 물었다.
“부인, 예수를 데려오라 시켰는데 예수는 어디에 있소?”
엘리사벳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수는 오지 않았습니다.”
“뭐요? 예수가 오지 않았다고?”
“네, 제가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신 종을 시켜 마리아에게 돈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 돈이면 예수가 교육을 받는 데 충분할 것입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가랴는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을 못 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내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간 화가 난 사가랴는 언성을 높였다.
“어찌 이럴 수가 있소? 내가 그들과 약속한 것을 어떻게 무참히 깨 버린단 말이오? 도대체 무엇이 못마땅한 것이오? 그 아이가 그리도 싫소?”
사가랴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엘리사벳도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였다.
“그래요. 싫어요!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게 싫어요! 그 아이는 훗날 만왕의 왕이 된다잖아요. 그런 큰 인물이 된다면 내버려둬도 언젠가는 되겠죠. 왜 그를 우리 집에 들여서 상전으로 받들어야 합니까? 왜 우리 요한을 지금부터 예수 발밑에 두려 하십니까?”
사가랴는 그제야 엘리사벳이 아직도 마리아와 그 아이에 대한 질투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가 뜨자마자 마리아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부지런히 달려갔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 앞에 예수는 보이지 않았다.
“예수야!” 요셉과 마리아는 소리치며 예수를 찾았다. 아무리 성전 밖을 돌아보아도 예수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성전 안에 있는지 모르니 들어가 봅시다.”
요셉의 말을 따라 마리아도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성전 안에는 방이 많아서 일일이 보면서 확인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찾던 중에 어디선가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회당같이 생긴 방에 사제들이 한 소년을 둘러싸고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소년은 바로 예수였다. 사제들은 예수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예수의 지혜에 놀라며 감탄의 표정을 짓기도 하고 때로 웃기도 하며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었다.
“예수야!” 마리아가 예수를 불렀다. 예수가 고개를 돌려 요셉과 마리아가 문을 열고 서 있는 것을 쳐다보았다. “예수야. 어찌하여 이곳에 있는 것이냐? 엄마 아빠가 얼마나 찾은 줄 아느냐?”
그러자 예수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