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에세이
밤나무가 피었던 그날이
이토록 선명한 것은
헤세가 끝내 건네지 못한 꽃들 때문일까
그 꽃을 그가 창가로 던져 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라면
그의 여름날을 훔치고 싶기 때문일까
여름이란 계절은
항상 지나고 나서야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여름 냄새란 그렇다
풋풋한
싱그러운
맑고 쨍한
그리고 습한 공기
누군가에겐 청춘과 사랑
그 모든 게 뒤섞인 향수가
여름이란 이름에 콕 박혀 있다
이 시에 나오는 꽃은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 <밤나무>라는 글에 나오는 장미를 말합니다. 이 글에서 헤세는 아름다운 밤나무가 풍성한 슈바벤의 작은 도시에서 있었던 여름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곳 도시 한가운데에는 성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 성곽을 둘러싼 해자 옆에 있는 숙소에 여드레를 머물렀습니다. 저녁이면 창문 앞으로 붉은색과 흰색 꽃들이 피어난 밤나무가 훤히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의 산책을 즐겼습니다. 해가 지면 돌아오는 길에 정원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손에 들고 가곤 했지요. 그때 그의 마음은 이러했습니다.
도시로 돌아가면 장미를 손에 들고 온 걸 기뻐할 일이 쉽게 일어날 것만 같아서였다. 예를 들어 목수 집 딸 키더를렌을 운 좋게 시장 모퉁이에서 만나게 되면 나는 모자를 들어 올릴 테고, 그녀는 어쩌면 고개만 까딱하는 게 아니라 대화까지 허락하고, 그러면 나는 알맞은 말과 함께 그녀에게 장미를 건네는 게 어떨까 생각하겠지?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창비
그는 이어서 그가 머물고 있는 주막집 '독수리'의 조카딸이자 종업원인 마르타를 생각합니다. 그는 장미를 단춧구멍에 끼우고 주막집에 들어서지만 그 장미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요? 그는 신사처럼 식사를 마치고 그대로 침실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방에서 창가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봅니다. 거리에는 수레들과 주막집 손님들과 사이좋은 연인들이 오고 가고 있었지요. 나무들 사이로 그들을 바라보며 헤세는 그만 그의 장미를 그 거리 속으로 던져 버리고 맙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며 어느 노래보다 사랑스러운, 저 여름밤들의 노래가 다시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 시간들이 겨우 여드레 낮과 밤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 생각에는 백번도 넘게 숲으로 가는 길을 걸었고, 백번도 넘게 장미를 꺾고, 밤나무 도시의 아름다운 소녀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백번도 넘는 저녁에 백송이도 넘는 장미들을 준비했다가 아무도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우울한 마음으로 어두워지는 거리에 내던졌던 것 같기 때문이다.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창비
이 글을 읽은 나는 그의 여름날을 그만 훔치고 싶어 졌습니다. 그건 그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겠노라 약속했던가? 아니다, 그런 약속은 하지 않았고 또 아무 이야기도 안할 셈이다"라고 못박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가 보낸 여름밤의 정취가, 그가 느낀 외로움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