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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해나 작가 May 17. 2023

꿈값 오백만 원이 결제되었습니다.

K드라마 열풍시대!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고백하는 나의 암흑기


성큼 다가온 드라마 작가의 문?



그렇게 김은숙 작가님의 모교인 문예창작과에 합격한 나는 부푸는 가슴을 안고, 김칫국 드링킹을 시작했다. '오, 드디어 내가 김은숙 작가님의 발자취를 따르는구나!' 그래, 인생 뭐 있나. 합격이라는 영광을 누리겠노라!' 하지만, 그때 당시 입학금과 등록금을 합하면 오백만 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했다.


그리고, 전업주부인 나에게 그 돈은 너무나도 큰돈이었고, 그 돈을 지한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자체가 스스로 참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전업주부에게 '돈'이란 '가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오롯이 나를 위한 지출이라니! 그것도 오백만 원을?!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먼저 읽은 건 남편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지갑을 기꺼이 열어주었다. 제2의 꿈을 지지한다는 남편의 선물이기도 했고, 나의 다짐이기도 했던 그때의 거금 지출은 나에게 김은숙 작가님과 같은 출신이라는 학생증 한 장을 안겨주게 되는데. (이 학생증은 평생 나에게 소중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딱 설렜다. 하지만, 나는 입학과 동시에 좌절에 부딪치고야 만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어린이집에 맡길 수 없던 나는 친정엄마께 긴급히 호출을 했고, 후에 엄마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떡하니 딸. 엄마가 도와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하는 일에서 빠질 수가 없게 됐어."

"괜찮아. 엄마. 나 진짜 괜찮아. 신경 쓰지 마요."


시어머니께는 아예 말씀도 못 드렸다. 오래전 앓으신 암병력이 있으셨던지라 몸이 좋지 않으셨고, 그런 분께 아이들을 덜컥 안기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사실, 울컥하기도 했다.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럼 그렇지. 한탄을 하던 그 순간 제일 미안한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남편이었다. 나의 꿈값에 오백만 원을 기꺼이 결제해 준 남편. 아, 어떡하지? 나는 퇴근한 남편을 붙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눈물도 고였던 것 같다.





"아이들, 어린이집에 맡기자. 하고 싶어 했잖아."

"아냐. 나만 생각하기에는.. 애들이 너무 어려.."


남편이 육아휴직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상 그 당시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빠들의 육아 휴직은 곧 퇴사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였다. 무거운 침묵 뒤, 남편이 입을 열었다.


"난 그 돈 아깝지 않아.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지지하고 싶었거든. 휴학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해 보면, 다그치지 않고, 돈 아깝다고 난리도 치지 않고, 진짜 끝까지 내 손을 잡아줬던 건 남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코끝이 시큰해진다.


남편은 알까? 나 때문에 지불했던 그 돈, 내가 내 손으로 글을 써서 벌어 남편 통장에 입금해 주는 게 꿈이 된 것을. 난 그렇게 김은숙 작가님 대학교의 학생증을 지갑에 늘 꽂고 다니며, 남편과 얘기했던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몇 년 간 계속다. 육아에 더욱 전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주길 바라면서 정성스레 아이들을 키워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야 내 꿈도 성장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어 열심을 다했다. 드라마라는 세계를 선망하게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그 선망의 불씨가 점 점 커져버려 활활 타게 되는 지경이었다는 거다. 아이들을 키우며 억눌린 자아가 폭발이라도 한 건가. 나는 시들기는커녕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힘으로 악착같이 육아를 버텨냈다.



어서 오세요. 여의도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흐른 어느 날, 인터넷을 하다가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드라마 작가 지망생 모집글을 보게 됐는데, 주 1회 3시간가량만 투자가 가능한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시 서울예대로 갈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라마 작가는 대학 타이틀보다 전문적으로 그 분야를 파고드는 게 더 이득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용감하게 지원을 했다. 기분 좋은 외출에 참 설렜었다. 면접을 거쳐, 합격을 하게 되었고,  (수강료를 결제할 때는 손이 덜덜 떨렸지만;) 여의도 금산 빌딩으로 입성하게 됐다.


아직도 기억한다. 나의 첫 수업일을. 국희의사당역 플랫폼조차도 그렇게 설렐 일이었을까. 수십여 명의 지망생들과 한 반에 복작복작 모여 인사를 나누고, 현직 작가셨던 강사님의 수업을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주일에 한 번의 수업은 나에겐 포도당 수액이었고, 숙취 해소제였으며, 그 어떤 야식보다 더 맛있었다.





나는 아직도 강사님의 그 말을 잊지 못하겠다. 첫 작품의 모진 합평 시간. 가차 없이 내 첫 작품을 향해 학생들이 칼날을 휘두르는 시간이 합평 시간인지라 여유로운 척 연기하지만, 사실은 초조해서 터져버릴 것 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처참한 시간 속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던 나에게 강사님은 말씀해 주셨다.


"박해나 씨 대본은 가독성이 좋죠? 큰 장점이에요. "


대본 가독성이 좋다고? 나의 큰 장점이라고?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뒤 실랄한 비판도 이어졌다.) 드라마 세계를 선망하며 오롯이 나에게 내려진 그 말은 드라마작가를 시작해도 좋아요,라는 일종의 큐사인이었다. (이현재 작가님 사랑합니다. 하트.)


무시무시한 합평을 치렀지만, 작가님의 한 마디에 나는 더욱더 열을 올리며 드라마 작가에 대해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 강남에 있는 대형 서점으로 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가리지 않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트렌드에 맞는 드라마를 써보리라는 야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야심에 취해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가장 중요한 기본. 기본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기본을 무시한 덕에 나는 쳇바퀴를 돌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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