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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해나 작가 Jun 27. 2023

어제의 동기생, 오늘의 당선자가 되다.

멘탈 붙드는 법



당선자

명단 속의



어느 화창한 봄 즈음, 나는 드라마 교육원 시절 친하게 지낸 동기에게 연락을 했다. 서로 이 길을 준비하느라 바빴던 탓에 한동안 연락을 뜸하게 했기에


-왜 이렇게 요즘 글이 안 써지는지 모르겠어.


정도의 푸념정도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기에게 전해 들은 건 당선돼서 드라마 제작 중이라는 서프라이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선?! 우와! 당선이라고? 너무너무 축하해!!!


동기에게 한껏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밥 한 번 먹기로 약속을 잡은 나는 그날 오후 동기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외출을 준비했다. 그때의 나는 무슨 마음이었던 건지 지금 다시 그 마음을 떠올려본다.


고마웠다. 진심으로.

이 척박하고 비루한 불모지 같은 작가 지망생 세계를 탓하며 비뚤어진 시각으로 공모전 세계를 바라보던 내게 동기의 합격 소식은 '거봐. 불가능한 세계는 아니야.'라는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보게 해 준 동기, 어떻게 고맙지 않을 수가 있나? 물론, 부럽다는 마음은 한편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말이다.


그렇게 얼마 뒤 실제로 합격 소식을 전해준 동기를 만났고, 오랜 시간 수다를 함께 했다. 얼마나 즐거웠던 하루였는지, 어떻게 둘이서 그렇게 오랜 시간 수다를 즐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동기가 건네준 응원, 우여곡절의 히스토리, 나와 비슷했던 마음 고충들, 막상 되고나도 여전히 펼쳐질 고난의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녀에게 너무너무 소중하다는 그 자부심을 고스란히 전해 느끼며 결심을 했다. 힘들지만, 불가능한 길은 아니니 다시 힘을 내보자고.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몇 년 드라마 작가 지망생 길을 걷다 보니 가끔 당선자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때도 있고, 동기들의 소식통에서도 건너 건너 알게 된다.


-나만 빼고 당선 길이로구나.


맞다. 처음엔 딱 저 마음이다. 왜 나만 안 되지? 미치겠다. 난 역시 안 되나? 자괴감과 우울감이 똬리를 틀며 나를 서서히 저 어둠 속으로 밀어붙이는 순간들은 꽤나 기분이 별로였다. 밑바닥 아래에서 만난 나를 보며, 며칠 동안 한 글자도 써 내려가지 못하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것도 꼴도 보기 싫어져 등 돌리고 있을 때, 진짜 안 되나 보다 하고 서서히 짐가방을 꾸리듯 포기를 준비하고자 하는 순간에 나는 늘 아이러니한 나를 만나곤 했다.


-다시 써보고 싶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직 있어. 들려주고 싶어.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아.


포기하기엔 세상에 꺼내보이고 싶은 이야기들이 늘 머릿속을 괴롭혔다. 그러면 눈물이 날 것 같아도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지망생 길을 걷다 보면 어제의 동기가 오늘의 당선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나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감사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희망을 보여준 시간. 안 될 거라고 포기하고 싶은 이에게 희망을 보여준 순간의 찰나. 어쩌면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가 되어 나를 다시 일으킬 그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특별한 자양분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힘들다. 작가 지망생 세계는 아이돌 오디션만큼이나 어쩌면 더 빡센 세계. 그래도 이 세계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동기생들이 있으니 덜 외롭다. 꾸준히 애쓰다 보면, 돌고 돌아 나와 당신에게도 당선이라는 기회가 오롯이 열릴지도 모르는 미묘하게 매력적인 세계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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