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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Nov 07. 2020

외로움의 짤막한 순간을 기록해보았다


by pixabay


적막한 심장 고동 소리가 거친 방망이질을 하며 텅 빈 껍데기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날은 꽃을 보고 있었어요. 산책로를 걷는데 꽃이 대뜸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그것은 잠든 아이 얼굴에 웃음이 피는 경이로운 표정으로 만개하기 직전이었죠. 낼름 꺾어 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작은 물병 하나를 준비하고 그 안에 꽃을 비스듬히 눕혀요. 한 발짝 물러서서 지긋이 바라봅니다. 실오라기 같은 얇은 빨대를 물고 물을 야금야금 빨아들이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했어요. 물이 죄다 빨리면 시들어 버리지 않을까. 아니면 그전에 생기를 잃어버리려나.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곳은 사람 손길이 닿아 반듯한 선으로 즐비한 내 방인데 너와 나 둘만 그것과 무관하게 자랐나 싶은 거 있죠. 쿵. 쿵. 두 눈에 애착이 실리면서도 어째서인지 눈가 밑으로는 두꺼운 거리감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나는 정수리에 어떤 꽃을 피우길래 이렇게 텅 빈 깡통처럼 요란하게 사는 걸까요.




by pixabay


평소에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한 말이 입 밖으로 실려 나가지 못하고 마음 한켠에 나뒹굴며 떨어집니다. 알록달록 감정이 물든 채 힘없이 바닥을 쓸며 쓸쓸히요. 시간에 뒤처져 말라비틀어지고 이제는 바삭 바스러진 말들. 그 색채는 힘줄이 굵게 돋은 채 더욱 뚜렷해져요. 쌀쌀한 가을 하늘 아래 색을 발하며 널브러진 것들을 한데로 쓸어 모아요. 그리고 한 단락이 마저 채워질 즈음이면 짙은 흑연심이 그 위를 걸어갑니다. 바스락바스락. 종잇 바닥 위에서는 서걱서걱 소리가 되고 마음 밭에서는 꽃이 폭폭 움을 틔웁니다. 바람이 불어와요. 글자가 사방으로 흩날리면서 비단같이 화사하고 부드럽고 질긴 꽃잎으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춤을 춥니다. 나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어요. 하지만 어쩐지 혼자입니다.




by pixabay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데 세상이 먼저 숨을 참아요.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무거운 숨을 사뿐히 내려놓고 속도 다 게우고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요.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죠? 이름도 모를 머나먼 심해 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본래의 갈 곳 잃은 숨줄기는 터질 듯이 불어나 가슴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나를 옥죄이고 있어요. 숨이 막히고 답답합니다. 더는 안 되겠어요. 할 만큼 했고 이제는 단념하렵니다. 지금처럼 가만히 숨죽이고 있으면 심연 속으로 점점 세상과 멀어지겠죠? 미련 따윈 없어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감각은 발버둥 치듯 더욱 뚜렷해지네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힘껏 움켜잡아요. 잠깐의 한눈이면 나를 영영 잃어버릴 것처럼 필사적으로.




by pixabay


외로움이 혼자일 때만 있나요. 손에 손잡고 사람들과 하하 호호 부대낄 때도 마음은 웬걸 서릿발 위에서 언 발을 동동 구릅니다. 귓구멍으론 사람들의 뜨거운 숨결에 젖은 말이 흘러들어와요. 덕분에 귀는 새빨개졌지 뭐예요. 그렇지만 귓구멍 입구에서 온기를 떨친 활자는 굽이굽이 몸 안을 타고 들어가지요. 이윽고 쇠붙이처럼 서늘해지고 마음에 쩌억쩌억 달라붙어서 그 안에 남아 있는 온기까지 몽땅 앗아가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요, 속의 냉기와 밖의 뜨거움으로 안팎의 괴리감이 생겨요. 그 틈바구니를 어두침침한 외로움이 그악스럽게 들어찬답니다. 그리고 자존심만 세지지요. '흥,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해. 앞으로도 영원히!' 콧대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그 능선이 능히 사방으로 뻗어나가 마음에 으리으리한 성벽을 둘러쌓아요. 이건 저주임이 분명해요. 겨울왕국에 제 발로 찾아와 나를 따듯한 두 손으로 감싸 녹여줄 사람. 그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쩌면 불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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