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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편안 Jul 18. 2021

<세상을 담고 싶었던 컵 이야기> 읽고 친구를 만나다.

책 리뷰

박성우 시인이 쓴 <세상을 담고 싶었던 컵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다.

어느 날, 발걸음을 따라 책이 사는 숲으로 갔다. 그곳에서 마주친 두 개 점이 하얗고 둥근 머그컵 위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눈길을 피하며 아래를 보니 연분홍색 띠지가 보였다.


“금이 가고 깨지더라도 나는 나대로 오롯이 살아가려 해.”


띠지에 적힌 문장은 주인공 머그컵이 하는 말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건넨 말일까? 궁금증이 생긴 난 이 책과 친구가 되기로 했다.


생김새만큼이나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진 머그컵 커커는 숲속 친구들과 만난 10가지 이야기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다’라며 위로했다. 박성우 시인이 지은 이번 이야기는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생생한 리듬감과 섬세한 표현이 넘쳤다. 아무리 감수성이 쿨쿨 자는 사람이라도 일순간에 깨워줄 동화였다. 단, 아기자기하고 순수한 이야기를 지겨워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맞지 않다.


컵 이야기가 주는 2가지 재미를 꼽자면, 이야기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을 만나는 것과 커커가 매번 무엇을 담을지 유추해보는 것이다.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다 보면 어느새 글에 담긴 따뜻한 마음에 식은 마음이 데워진다.


첫 장을 넘겼다. 표지보단 한결 부드러운 표정을 짓는 커커가 있었다. 풀숲 미루나무 아래에 있는 커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예뻐해 주는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즐거운 나들이를 끝으로 홀로 여기에 남았다. 원래 있던 집도 함께 할 가족도 잃은 커커였지만, 눈물 대신 햇빛이 내려주는 온기를 담고 비가 내려주는 촉촉한 두드림을 받으며 담담히 그곳에 있었다. 마치 버려진 상황을 받아들인 것처럼.


강가 풀숲에 둥근 머그컵이 놓여 있다. 어떤 즐거운 걸음을 따라 나왔다가 혼자 남겨지게 된 컵. 자신을 깜빡 두고 멀어져갔을 발소리를 까막까막 들었을 컵. - 갑자기 낯선 곳에 혼자


마음이 아팠다. 버림을 받으면 아프고 눈물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너무 담담해 보여서 오히려 안타까웠다. 감정이 없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빨리 알고 싶어서 다음 장으로 넘겼다.


처음 커커가 만난 친구는 배추흰나비 나나다. 홀로 남은 커커 주변으로 한가득 꽃이 필 때 나나는 꽃향기를 맡으며 날다가 바람에 휘청거려 커커 위에 앉았다. 휴우하고 숨을 내쉬다 보니 지금까지 맡은 꽃향기보다 더 풍성한 향기가 컵에서 나는 것이 아닌가. 나나는 놀라웠다. 


은근한 호기심이 생긴 나나가 더듬이로 물음표를 그려 보이며 물었다.



음, 그런데 말이야.
넌 날개도 없는데
어떻게 향기를 가져와
담을 수 있지? 


음, 그거는 간단해.
향기 있는 곳에
내가 있기 때문이지!



커커의 대답은 싱거웠지만, 나나는 아리송한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굳이 채우려고 욕심부리지 않고 그저 있어야 할 곳에 커커는 있었다. 버려진 풀숲에서 봄을 맞아 피는 꽃들을 내치지 않고 가만히 기댈 수 있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꽃향기를 가득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커커도 자신을 답답하게 느낄 때가 있었다. 드디어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안도했다.


“나한테도 발이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어, 하지만 커커는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사는 일만큼 귀한 일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에 닿아 자신이 하는 일도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되짚어본다. 누구인가의 든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귀한 일이야, 슬프거나 외롭고 힘든 이가 찾아오면 언제든 그들에게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로 당분간은 살아가야겠다고 커커는 다짐한다.” - 마음도 날개처럼 딱


여기서 컵인 걸 알지만 커커에게 인간미를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은 또 깨달음으로 마침표를 찍는 커커를 보면서 얜 뭐지, 남다른 컵이라고 감탄했다.


커커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겠다는 다짐대로 여러 친구(배추흰나비 나나, 일개미 일일이, 사춘기 소년 참게 차차, 진정한 사랑을 찾은 딱새 부부 따따와 띠띠, 외로움 많은 깡충거미 외로로와 모험심 강한 땅강아지 삽삽이, 감수성 부자 민달팽이 핑핑이, 노력파 나팔꽃 모모, 노래하는 귀뚜라미 뚜뚜, 그리고 하숙생 도마뱀 도도)가 찾아올 때마다 마음을 들어주고 함께 웃고 울어주면서 때로는 방이 되어 마음을 채우고, 때로는 밤새 대화하는 친구가 되어 노래를 채웠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존재도 없다. - 이렇듯 저마다의 자리에서


커커가 아픈 현실을 그토록 담담히 받아들였던 건 집에 있든지 숲에 있든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였다. 커커는 움직일 수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기에 할 수 있는 일은 했다. 컵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언가를 담는 일. 결국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로 있게 했다. 지나가는 풀숲 친구에게도, 읽는 나에게도.


살다 보면 금이 간 마음에 누가 약을 발라주진 못할망정 따가운 가시들을 꽂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커커를 만나서 밤새 한탄 좀 해야겠다. 


커커, 지금 자?
안에서 좀 쉬다 갈게.
오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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