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새 문학 - 격리 시대엔 격리 문학
내가 세 들어 사는 방 창문 앞에는 선홍색 꽃이 피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공부를 하다 말고 그 나무를 쳐다보곤 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나무의 소리 때문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단 한 그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운이 좋게도 내 방 창문은 주차장을 낀 약간의 녹지를 향해 있어서 다양한 색깔 다양한 종류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보였다. 하지만 많은 나무 중에 유독 그 나무는 눈에 띄었다. 아니, 귀에 띄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이맘때 선홍색 꽃이 피는 그 나무에는 유독 새들이 깃들었다. 그것도 흔한 참새나 비둘기가 아닌 검은 모자를 맵시 좋게 쓴 것처럼 꼬리 깃과 이마에 검정 무늬가 있는 회갈빛 새나 녹색 몸에 붉은색 파란색이 섞인 사진첩에서만 보던 앵무새 같은 새들이 꼭 그 나무로만 날아와 앉았다.
사실 저들을 알게 된 것은 소리가 먼저였다. 매일같이 목소리만 듣고 있다가 어느 날 빼꼼히 내민, 무심결에 얼굴을 트게 된 이웃처럼. 나처럼 편안한 바지에 티셔츠 차림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어디 외출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화려하고 예쁜 자태로 꽃과 나뭇잎 사이로 내민 새의 얼굴이 너무나 예뻐서 넋을 잃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성한 이파리들로 인해 새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드물었지만 푸른 잎과 붉은 꽃 사이에서 무수히 들리는 재잘거리는 소리에 무심코 아, 오늘도 왔구나 너희.라는 생각이 들곤했다.
밖은 전염병으로 시끄러웠고 그래서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방 안에 갇혀버린 나는 본의 아니게 창 밖만이 유일한 내 밖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창궐하는 전염병에 격리 생활이 점점 길어지면서, 나는 꽤나 피폐한 상태였다. 그때 유일한 낙이 창 밖을 쳐다보는 것뿐이었는데, 정사각형의 창문이 나중에는 미세하게 변하는 벽에 걸린 화면처럼 느껴졌다.
좀 재미없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틀어놓은 재미없는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밋밋한 사회고발 다큐나, 논버블 블랙코미디나, 대사 하나 안 나오는 지루한 예술 영화의 한 장면이 끊임없이 영사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 영상 화질이 꽤 괜찮은 걸? 따위의 생각을 하며 혼자 킬킬거렸다. 정말 외출이 절실한 때였다.
그러다 한 사람이 지나가면, 와, 사람이다 사람. 하면서 그 사람이 내 창문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지나갈 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나도 문 밖을 나서면 되지만 문 밖을 나서는 행위 자체가 어느새 좀 낯설어져서 그냥 방 안에서 밖이 존재하는지, 잘 있는지만 염탐하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뀌자 안과 밖 중에 나는 어느새 안에 속한 사람이 되어서 손잡이를 돌리면 열리는 문이 이제는 독특한 질감의 벽걸이 같이 느껴졌다. 그때쯤 나는 이 새나무와 만나게 된 것이다.
거리에 인적이 드물고, 자동차도 지나지 않는 청명한 날에, 나는 빠끔히 창문을 열어 놓고 나무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방 안에 숨은 나만큼이나 새들도 나뭇가지 틈에 숨어버려서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소리만 들려왔다. 마치 나무가 지저귀는 것처럼. 나무가 입을 얻은 것처럼.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운율 섞인 언어로 매일매일 말을 붙이는 그 나무는, 외로운 내 사정은 들은 채도 없이 자기 말만 끝없이 떠드는 재밌는 친구였고, 그렇게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그 새나무랑 친구가 되었다.
나의 일과는 방 안을 빙빙 맴돌다 결국 책상 앞에 앉아 쌓여있는 일을 하다 두 걸음 옆에 있는 침대에서 잠드는 것뿐이었다. 그 책상 너머의 창 밖으로는 새나무가 있어서, 깨어있는 내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밤이면 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니면 그곳에 있는데 다만 잠들어 소리가 없는지, 조용해진 새나무는 가로등 없는 저 너머에서 실루엣만 비쳤고, 그 실루엣마저 어둠에 녹아 사라지면 나는 아, 이제 잘 시간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이 새나무를 꽤 사랑하게 되어서, 나중에는 서로 오래 산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안부를 물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잘 잤냐고, 네가 지저귀는 소리에 내가 깼다고, 아침에는 좀 조용히 해주는 것이 문명인의 상식 아니겠냐고 묻고는, 아니 되었다. 괜찮으니 계속 이야기해봐라. 라며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입에 퍼서 넣으며 나무가 하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자리에 뿌리 박힌 새나무나, 한동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꽤나 잘 지내고 있다. 이 기이한 하루는 정말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뉴 노멀이라고 부르는 이 일상이 정말로 더 길어지게 되면 언젠가 나도 나무의 말을 하게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새로 사귄 새나무 친구를 매우 좋아하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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