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새 문학, 격리 시대엔 격리 문학
이따금씩 나는 멋진 사진을 모아다가 컴퓨터 배경화면을 바꾸는 습관이 있다. 일 년에 두세 번 이따금씩 계절이 바뀔 때만 하던 이 작업을 얼마 전 심혈을 기울여서 하게 된 까닭은 우습게도 격리되어 있던 집안 풍경을 바꾸고 싶어서였다.
집에만 있다 보니 가구 위치를 이렇게도 바꿔보고 벽에 화사한 장식품도 걸고 싶지만 나는 세 들어 사는 단칸방 살림이라 그다지 선택지가 없었다. 가끔하던 습관대로 매일 들여다보고 있는 컴퓨터 배경화면이라도 좀 화사하게 바꿔보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많은 사진과 그림을 감상하다가 나는 문득 또 하나의 눈을 뜨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세눈박이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사실, 나는 글쓰기나 문학에 대한 관심은 많은 편이었지만 미술이나 사진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진 취미가 없는 편이었다. 나는 보통 윈도우가 처음에 지정해 주는 아주 밋밋한 배경화면을 그대로 사용하곤 했다. 사실 내가 그런 배경 화면을 오랫동안 쓰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였다. 인테리어에도 도통 관심이 없어서 내 컴퓨터 주변은 처음 온날 세팅 그대로, 업무에 도움되는 책 몇 권 외에는 별다른 장식도 없이 유지되었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집도 마찬가지였다. 집은 원래대로 익숙한 집이었고 따로 변화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화면은 일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집도 원래 대로 편하면 그만이었다. 이런 나를 변화시켰던 것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직장상사였다.
편의상 그분이라고 부를 이 직장상사는 예술적 안목이 매우 높으신 분이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패션에 관심 있는 옆 부서 직원이 그분의 옷을 보며 색이랑 옷 선이 정말 우아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야 '아, 그래 그런 것도 같네요.'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 디자이너에게 맞춘 꽤나 값나가는 옷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눈에는 그저 상사가 정장을 입고 오셨구나 정도였는데.
어려서부터 그분은 예술에 풍부하게 노출된 환경에서 자라나서 인지 회사에서 자리를 주최할 때면 꽃 하나 티슈 각도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지나간 자리는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항상 반짝반짝 빛나게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볼 땐 정말 신기한 마법 같아서, 어떻게 하신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이 편이 보기가 더 좋잖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함으로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그렇게 멀리서 보면 정말 우아하고 멋진 분인데, 그런 분을 우아와 멋짐에 대한 센스가 전혀 없는 내가 모시려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왜냐하면 그분과 나는 특정 부분에 대하여는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사는 것처럼. 그래서 업무 중에 같이 밥을 먹다가도 대수롭지 않은 일에 서로의 말문이 막히는 일이 잦았다. 아니 왜? 라던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못 알아듣겠습니다? 같은 사회인의 예의상 차마 던지지 못한 침묵 속의 외침이 잠시 식탁으로 쓰이고 있는 회의실 탁자 위로 오갈 때면, 정말이지 밥을 먹다 체하기 참 좋았다.
처음으로 그 문제가 수면 위로 터져 나온 건 그냥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을 찾아오라는 단순한 업무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큰일이 아니니 인터넷에서 주제와 관련된 사진 몇 개를 얼른 찾아서 그분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분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표정 정도는 단박에 읽을 수 있는 훌륭한 직장인이 되었으므로 그분의 깊은 한숨,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 없음에 절망이 스쳐 지나가는 표정을 얼른 잡아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원인이 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는 잠시 숨 막히는 침묵을 이어가다 말문을 열었다.
"다시 찾아와."
"왜 인가요?"
"사진이 선명하지 않잖아."
그래서 다시 찾아갔다.
"다시 찾아와."
"이번 사진은 선명 한대요?"
"색감이 칙칙하잖아."
그래서 또다시 찾아갔다. 그랬더니 한숨을 푹 쉬시고는 마른세수를 하시더니 다른 지시를 내렸다.
"많이 찾아와."
그래서 나는 인터넷을 정말 통째로 집어 들어 대야에 털어 낸 것처럼 주제에 관련이 있으면서 화소가 좋고 밝아 보이는 사진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서 가져갔다. 나도 정말 잘하고 싶었고, 퇴근도 하고 싶었다.
문제는 이런 사진 업무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있을 예정이기에 나는 이 분의 취향을 분석이라도 해 놓아야 할 것 같아 이번에는 상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옆에 서서 그분이 내가 모아 온 사진 중에 적당한 것을 추려내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분은 내가 그렇게 애써 모아 온 사진들을 그렇게 오래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쓱 보더니 하나씩 딱딱 골라서 완료 폴더로 옮기고는 이렇게 간단할걸 이렇게나 오래 걸리다니 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걸 업로드하라고 지시하고는 퇴근하셨다.
나는 혼자 남아 그분이 고른 사진을 보며 도대체 뭐가 다르냐고 내적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그냥 나 괴롭히려는 거 아니야? 내가 일찍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나!라고 하면서도 눈으로는 어떻게든 차이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앞으로도 이렇게 야근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몇 달에 한 번씩 사진을 업로드해야 될 때가 되면 언제나처럼 위와 같은 일이 반복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래와 내적 울화통을 터뜨리곤 했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다 나무잖아. 다 한 그루씩 서 있잖아. 화질도 좋고, 나뭇잎은 녹색이고, 하늘은 파란색인데!'
'길이잖아. 이것도 길이고! 이건 같은 건물인데 왜 이 사진은 안 되고, 저 사진은 괜찮다는 거야! 왜 같은 건물인데 차별하고 그래요! '
그렇게 서너 번쯤 지나니 '사진 아주 많이'는 내 일상이 되었고, 보통 업로드 시기 몇 주 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사진 사이트들을 순례하며 최대한 좋아 보이는 사진을 많이 뽑아내는 게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들이 가진 구도나 느낌 같은 것이 어설프게나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맘 때가 되었을 때, 그분이 한 마디 차갑지만 따뜻한 한 마디를 해주셨다.
"그래도, 아주 조금 나아졌네."
솔직히 그때는 그 말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고, 지금 저것이 칭찬일까 아니면 비꼬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깐깐한 상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애증 어린 시간을 한 해, 두 해 보내다가 나는 여러 다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고 시간이 좀 흐른 뒤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즐겨찾기 폴더에 등록된 수많은 사진 사이트들을 발견하였다. 단박에 깔끔하게 지워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회사 생활에 꽤 많은 고통을 선사하였던 '사진 아주 많이' 폴더가 지금 보니 꽤나 우습기도 하고 이게 다 뭐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그 사이트들에 다시 한번 들어가 보았다. 아무렇게나 스크롤을 넘기다가 문득 괜찮은 사진이 보이길래 저장을 했고, 또 스크롤을 넘기다 보니 그분에 눈에 단박에 통과할 법한 제법 훌륭한 사진이 보이길래 저장을 했다. 습관처럼.
이제 사진 좀 보자며 한숨부터 쉬며 따라오라는 상사도 없는데 나는 또 그렇게 어느 한 나절 동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한 폴더를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무슨 정신으로 내가 이 짓을 또 하고 있었을까 허탈해하다가 그 폴더를 바탕화면 폴더로 등록시키는 것으로 낭비한 시간을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내 배경화면을 바꾸는 습관이 시작되었다.
그 뒤로 이따금씩, 배경화면으로 흘러가는 사진들이 너무 눈에 익어 진부 해지는 때가 오면 나는 또 짬을 내서 사진을 고르고, 그간 업데이트된 괜찮은 사진들을 보며 사진사들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진 사이트들을 순례하다가 그림 사이트로 빠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곳은 추상화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였다. 알 수 없는 물감 범벅들의 향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이전까지 그저 물감을 뿌리고 섞어 놓은 추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예술작품이라고도 생각 안 했다. 저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아무거나 칠해 놓은 것을 왜 저리 비싸게 팔며, 왜 저기에 가치를 두고 수집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의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을 보느라 한동안 마우스에 올려놓은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그림이 나를 끌어당기는 처 것처럼 멈추지 못하고 계속 그림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굉장히 낯선 감각이었다.
그래서 모니터로 빠져 들어가려는 나를 억지로 붙잡아 세우고 물었다. 너 도대체 왜 그러냐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리고 그 대답은 아래와 같았다.
- 색들이 어지러이 섞여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섞여 있는 색깔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다. 언뜻 보면 무작위의 색이 섞여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 어지러이 섞여 있으면 응당 마음이 혼란스러워야 하는데 잘 정돈된 혼돈을 보는 듯, 묘한 질서가 있어서 그 규칙을 찾아 그림에 계속 시선이 머물게 된다. 오히려 혼돈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다양한 색깔로 표현되어 오히려 생기발랄하게 느껴진다.
- 비슷한 톤들이 섞여 있는 부분들이 있지만 대조적인 색깔이 예상치 못한 곳에 선을 긋도 있는데,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색깔이 나름대로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 조화의 신비로움을 계속 보고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마치 성격이 맞지 않는 여러 명이 섞여 있는 우리네 직장이나 교실의 풍경의 한 장면을 잘라와서 보는 느낌이었는데, 성격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 갈등이 될만한 요소도 참 많았는데, 그런데도 어떻게든 사람 사는 사회가 질서와 무질서를 넘나들며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이 그림 또한 그러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그림도, 다음 그림도 계속 넘겨보면서 여기엔 뭐가 있을까 하고 흥미진진한 느낌으로 생전 처음 추상화를 감상하게 되었다. 그림을 보는 것이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줄이야!
그 날을 기점으로 내가 여지까지 알지 못했던 한 분야의 지평선이 열렸다. 눈을 하나 더 뜬 기분이랄까. 아니면 눈이 하나 더 생긴 기분이랄까.
그 이 후로 나는 세눈박이처럼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상에서도 전혀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당연해 보였던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사물을 질서정연해 보이도록 약간의 각도를 틀어 놓기도 하고, 물건을 고를 때 색깔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좋은 옷이 있으면 이것이 왜 좋은 것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다. 그제야 나는 몇 년 전 까다로워만 보였던 그 직장상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말 새롭고 신선한 감각이었다. 그림을 펼쳤을 때 뇌에서 불빛이 펑펑 터지는 것 같은 자극은 마치 신세계의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어두운 동굴에서 빠져나와 화려한 색깔이 평원이 어지러 히 펼쳐진 새로운 세상의 지평선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세눈박이였을 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타고나게 센스가 좋은 사람들은 항상 이런 것을 볼 수 있었다니! 부러워라! 그 사람들은 이제야 눈을 뜬 내가 신기해하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뭐하고 산 거예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로써 알게 된 건 사람들이 꼭 두눈박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야 눈을 뜬 나와 같은 세눈박이 갓난아기를 보며 당황할 네눈박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새로운 지평선을 더 많이 발견한 오눈박이나 육눈박이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분명 가슴을 치며 두 눈 가진 사람들의 세상에 답답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분이 나를 보면서 그랬듯이 말이다.
그래서 이 험한 격리의 시대에 나는 새로운 눈을 장착한 채 인터넷을 부유하며 행복해하고 있다. 동시에 어딘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지평선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은 설레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그분은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니었어요. 제 글은 늘 칭찬해 주셨거든요.
*"너는 글은 참 잘 쓰는데 이건 왜... (동공 지진)" 같은 말씀을 자주 하셨죠.
*이제와 생각해보니 저에게 새 분야를 열어주신 은인이셨네요.
*그 분이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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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아무나 - 밀리의 서재 (milli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