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에 대하여
탁! 하고 스쳐 지나가는 반가운 불빛. 바로 영감이다.
작가마다 영감을 얻는 방식은 다 다를 것이다. 나는 한동안 글을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어서 글에 대한 영감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고심한 적이 있다.
물론 글도 어느 정도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아무 소리나 주워섬기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끄적끄적 시간을 보내보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집중도 잘 되지 않아 영 시간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 보물지도 없이 맨땅에 삽질하는 기분이다.
때로는 얻어걸려 횡재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런 일은 영 드물다. 그래서 오죽 답답했으면 이렇게 영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탐구하는 글까지 쓰게 된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심즈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두 가지 삶의 목표를 이뤄보고자 애썼다.
1.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
2. 글로만 먹고살고 싶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생의 길이를 최대로 늘려 넣고 청년으로 삶을 시작한 작가 A의 분신은 글을 쓰고, 글을 읽으며 살다가 중년이 되기 전에 꿈을 이루었다.
아 사실 직장도 얻긴 했다. 초기에 정말로 먹고 살 돈이 없어서, 둘째로는 승진 선물로 작가들이 로망으로 생각할 법한 선물을 주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작가들이나 쓸법한 엔틱한 컴퓨터라거나 앉아서 책 보면 기분이 끝내줄 것 같은 근사한 소파라거나 아니면 진짜 작가의 서재에 있을 법한 엄청나게 고풍스러운 책장 같은 것들을 주었다.
컬렉션하고 싶은 상품을 승진의 대가로 주어서 나중에는 돈 벌러 직장에 다녔다기보다는 그 승진 선물이라는 복지에 눈이 멀어 직장을 유지했던 느낌이다. (보너스와 복지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사장님들.)
결론적으로, 그 프로그래밍화된 안전한 세상에서 작가A는 꿈을 이루었고 매일 같이 3000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며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게임 속 세상에서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더래요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나는 남은 생애를 최고급 가구나 멋진 인테리어로 서재를 바꾸어 놓으며 얼마 정도 시간을 보냈으나 나의 분신은 다 떨어진 소파에 앉아 있었던 시절과 다름없이 먹고 자고 싸고 다시 글을 쓰고 있었다. 도무지 돈을 쓸 줄 모르는 놈이었다.
돈을 벌어도 작가 A의 인생에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다. 평생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남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다가 인생이 끝나버리는 거구나 생각하니 뭔가 회의감이 들어서 게임을 꺼버렸었다. 한동안, 작가로서의 인생도 별거 없구나 하는 허탈감을 느꼈다.
하지만 며칠 뒤, 불현듯 다시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써야 할 텐데 같은 고민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며, '별 수 없지. 글을 써야겠어.'라는 생각으로 다시 펜을 잡았다.
그런데 또다시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닌가!
대체! 왜! 어째서!라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단골 카페에서 향기 좋은 커피만 홀짝이고 있던 나는 다시금 최고의 작가로서 살았던 내 게임 속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게임의 설정에서는 '영감 받은 상태'라는 글이 엄청나게 잘 써지는 상태가 존재하였는데, 뜨거운 물로 오래오래 샤워를 할 때, 미술품을 감상할 때, 글을 읽다가 혹은 그냥 자다가 깼을 때에 그 상태에 돌입하곤 했다.
그래서 무릎을 탁 치며 나를 영감을 얻은 상태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영감 받을 만한 행동을 하거나, 영감을 주는 물건들만 내 방 안에 적절히 배치한다면 글을 쓰는 효율이나 질에 현격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게임에서 배운 대로 (게임도 때로는 이렇게 인생에 큰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내가 왕년에 게임기획자여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 맞다.)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를 해보았다. 느긋하게 천천히, 나는 샤워하다가 옛날 일을 떠올렸고 옛날의 향수에 빠져들다가 직장에 지각을 했다!
그래, 깜빡했다. 나는 아직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없는 지극히 하찮은 소시민이었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해야 했다.
둘째로 영감을 얻기 위해 '예술 작품 감상하기'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굉장히 쉽지 않았다.
나는 집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직행했던 어렸을 때 습관 그대로 직장이 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달려오도록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습관을 뚫고 미술관까지 간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지식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나에게 그림이란 것은 그저 예쁘고 보기 좋은 무엇인가에 지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림 한 장을 보고서 엄청난 느낌이나 설명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일면 부럽기까지 했다. 물론 좀 더 작가나 그림에 대해 조사를 하고 갔다면 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귀에 꽂아 번호를 누르는 방식으로 튜레이팅을 받는 기계를 빌렸다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 날따라 직장을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못한 서러움으로 약간 반항적인 상태가 되어 '너희가 떠드는 대로만 저 작품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그냥 내 맘대로 볼 거야! '같은 유치한 기분으로 훌쩍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미술관 안에는 의외로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외에 사람들의 소음이 적은 정숙한 실내, 평일 오후에 적당한 숫자의 사람. 그리고 각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환기된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영감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거기서 당장 글을 쓸 수 있는 무언가를 얻어오지는 못했다. 다만 무언가 깨 보면 보석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돌덩이를 두어 개 가지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미술관 안에서는 정작 그림 감상 그 자체에 집중하느라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오히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잠잠히 돌이켜보다가 얻게 되었다.
작가들만큼이나 고집 센 화가들이 저마다의 필체로 자신의 생각이나 머릿속 풍광을 재현해 놓은 것이 떠오르며 약간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원하는 만큼 사과를 그릴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과 비슷한 것을 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짠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화가의 생애를 기초로 쓴 소설을 쓴 작가들이 있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더하여 영감보다는 아주 기초적인 미술에 대한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느낌이었는데 그냥 이것도 결국 파내려 가다 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영감의 열매를 얻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술작품을 감상한다와 영감을 얻는다 사이에는 엄청난 중간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 경험조차 자양분이 되어 나는 '억지로 미술관에 가는 작가'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묘사에 색체가 더해져 약간은 더 풍성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이 미술관뿐이랴. 세상의 모든 경험이 결국 영감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또 영감이 잘 들게 해주는 것들을 내 방에 배치하여 글쓰기에 효용성을 높여보겠다는 계획을 세워보았다.
자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 볼까?
그런데 이미 내 책상에는 나만의 영감을 주는 것들을 몇 가지는 모여 있었다. 이를테면 지금 내 옆에서 모락모락 김을 내는 갓 끓인 차나 다채로운 박자로 구성된 발레 연습용 소곡 음반, 세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밤새 우쑥 자라는 다육식물 등이 그것이다.
통통한 다육식물을 쓰다듬다가 여전히 미술관에 미련이 남았는지 텅 빈 벽을 보며 아, 엽서 크기 그림이라도 벽에 붙여 놓으면 어떨까 싶다. 어떻게든 영감을 방에 초대하고 싶은가 보다.
어디선가 번쩍하고 영감이 나타났으면 하는 밤이다.
글이 마음에 드시거나 SF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아래 링크에서 밀리의 서재에서 출판한 책 [Dome - 기억 정렬 붕괴] 도 둘러봐주세요.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06d1120d346242ee
https://www.millie.co.kr/v3/millieRoad/detail/30666?nav_hidde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