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학을 졸업한 이후 줄곧 방송 작가란 타이틀로 살아왔다. 글 쓰는 삶을 마음에 품고 살던 중 대학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왔고 운명처럼, 우연처럼 문예창작과에 갔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에는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 취업할 때는 국어교육학과에 들어가 국어교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당시 인기 직업 중 하나였던 방송 작가를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동안 온실 속의 화초처럼 특별한 고생과 고난 없이 살아왔기에 뭔가 세상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방송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방송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 처음 취업할 때부터 극 I였던 나는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겼던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다. 내성적인 성격에다 당시 방송국에선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들보다는 2년제를 졸업하자마자 직업전선에 뛰어든 현장 경험자들과 일을 하는 기회가 많아서인지 내 나이가 꽤 많았다. 고로 현장 경험자들의 나이는 어렸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10년 정도 한 사람들인냥 거들먹거리며 요즘 인스타 쇼츠에서 사회생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인플루언서처럼 다이어리를 쓰는 법을 가르쳤다. 한 마디로 TO DO LIST를 만들라는 것!!
▲ 글만 쓰기는 심심해 챗GPT에게 부탁해 본 그림. 그림은 괜찮지만, TO DO LIST 아래 쓰인 외계어가 꼭 AI가 그린 그림이라는 걸 인증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AI로 삽화나 이미지를 생성하니, 심심하던 글에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 좋다!!
요즘 얘기로 바꿔 말하자면 노션 활용법에 대한 이야기랄까? 그런데 그 TO DO LIST는 이미 하고 있던 거고 업무가 버벅였던 이유는 늘 업무1을 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면 언제 업무1을 주었냐, 업무2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윗선의 지시로 더 버벅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이른바 젊꼰(젊은 꼰대)의 자세로 잔소리를 하고 싶어 후배들을 몰아세운 것이다. 사실 그 선배란 사람도 일을 한 지는 1~2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예전부터 젊은 꼰대가 있었다는 소리다. 정작 그 사람은 다이어리를 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린 선배들을 모시며 일을 ‘내 나이가 너무 많나?’하면서 살다 보니 어느새 나도 20년 차가 훌쩍 넘어버렸다. 지금은 오히려 일을 할 때 경력을 낮춰야 하는지 고민하는 나이와 연차가 되었고 그때 그 젊꼰 선배 때문인지 내 나이와 연차를 애써 강조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랬더니 적반하장으로 가르치려는 사람들이 있어 적당히 나이와 경력을 강조한다. 역시 세상은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이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너무 젊거나 늙어서 이건 안 돼 저건 돼’ 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뭔가를 시작하기에 늙은 나이는 없다. 물론 방송 작가처럼 층층으로 선배를 모셔야 하는 직업이라면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요즘처럼 방송이 한물 간 시대 작가를 하기 위해 방송을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 글, 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내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방송 속에 숨어 글을 써 왔다. 마치 고스트 라이트(유령 작가)처럼 내 생각보다는 출연자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한 글을 써 왔다. 그 버릇 때문인지 글을 쓸 때면 정답이 없는 글에도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는 젊은 꼰대가 아닌 꼰대로 불릴만한 나이, 그런 생각을 하면 더더욱 고루해지기 마련인지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 보려 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글을 쓰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