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눈은 관계의 틀

좋은 눈

by 안종필 작가



• 바보교회 : 바보교회의 오목사님과 5명의 집사님이 기도 중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능력 있는 일꾼을 보내주세요”
• 돌파교회 : 목사님과 70대 이상 5명의 장로님과 집사님이 모여 합심 기도 중 이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교인들 모두가 능력 있는 일꾼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바보교회 목사님의 바라봄과 돌파교회 목사님의 바라봄의 법칙을 잘 보셔야 합니다. 한 가지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바보교회 목사님은 기존 교인들을 일꾼으로 보지 않고 있다. 스포츠 감독 중에도 맨날 어디 좋은 선수 스카웃 할 수 없나하고 푸념 섞인 나약한 말만을 하는 감독들이 있다.

존재의 힘은 존재의 대상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서부터 능력의 차이는 시작된다.

지도자의 시선은 잠자고 있는 휴력을, 살아있는 활력으로 소생시키는 지휘자의 지휘봉이다.

영혼의 생기가 넘치면, 육체는 기쁨의 에너지로 발산한다. 바로 목소리에도 힘이 붙는다. 자신감 넘치는 어휘들로 가득차지요. 말투가 달라진다. 좋은 눈에서 밝은 말소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소설가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보기 좋게 살이 붙은 건강한 체격 자신감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과 걸음걸이를 가진 남자”

감사를 먹으면 눈이 먼저 바뀐다. 다음은 말이 바뀐다. 그 다음은 발걸음이 바뀐다. 하늘을 향한 시선은 우중충한 나를 신선한 나로 이동시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두 개의 도성(공동체)을 말한다. ‘지상의 도성과 하늘의도성“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만들었고, 자신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하늘의 도성을 이룬 것이지”

안종필은 ≪목적을 찾아가는 삶≫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눈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를 결정하는 ‘관계의 틀’이다

관계의 틀이란, “보이는 사물을 네모로 보느냐, 동그랗게 보느냐를 발견하는 시선이다”

그 눈으로 말의 모양을 결정한다. 감사하게 보면 감사가 보이고 불평으로 보면 원망과 불안이 보인다.

눈은 시선이다. 시선은 세계를 보는 창이다.

어제와 오늘을 같은 날로 보는 사람이 있고, 어제와 오늘을 전혀 다른 새로운 날로 보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상대를 어떤 인물로 볼 것 인가는 바라봄을 결정하는 자신의 눈이다.

돌파교회는 겨울이 지나 3월이 오면서 새로운 교인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마저 부족하여 주일 예배를 4부로 늘렸답니다.

교회 이름도 돌다리교회에서 돌파교회로 바꾸었고요.

서울.전주.광주에서도 밀어닥쳐 시골길에 주일이면 경찰서에서 교통까지 정리 한답니다. 군수님께서 오셔서 “교회를 확장 할 수 있는 부지 2000평을 드릴 테니 주차장과 숙소도 건축 하십시오” “우리 군에 자랑입니다.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목사님! 절대로 서울 큰교회에서 초빙해도 가시면 안됩니다.” 눈물 나는 감동입니다.

‘좋은 눈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눈이다’


∙ 눈은 관계의 틀(설레임)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행복론≫에 나오는 별에서 온 여인의 이야기다.

“2차 대전 중에 텔마홈슨이라는 부인은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주 모아비 사막에 있는 육군훈련소로 오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이 훈련에 나가면 오두막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섭씨 50도가 넘는 무더위에, 이야기 상대라고는 멕시코인과 인디언뿐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친정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사느니 감옥이 났겠습니다.”라고 불평을 호소했다. 이에 대한 친정아버지의 화답에는 단 두 줄 뿐이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한사람은 진흙탕을 다른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다.”

하지만 저는 그 두 줄을 일생을 두고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부터 저는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저는 선인장.난초.여호수아 나무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 했습니다. 사막의 낙조도 바라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저를 변화시켰을까요?

모아비 사막은 변함이 없고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당연히 제가 변한 것입니다. 저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입니다. 저는 비참한 경험을 제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모험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새롭게 발견한 세계에 자극받아 흥분했습니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저는 자신이 만든 감옥 창문을 통하여 별을 찾아낸 것입니다.“

막힌 땅을 볼 것인가, 열린 하늘을 볼 것인가?

눈은 관계를 바라보는 시작의 소리다.

눈은 진흙탕을 보든 별을 보든, 보는 사람의 해석과 선택에 따라 눈의 모양이 결정되는 관계의 틀이다. 관계의 틀은 누가 만들어 놓은 틀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가는 관계의 모양이다.

소망의 눈에서는 설레임의 소리가 나오고, 절망의 눈에서는 좌절의 소리가 나온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에게 가장 놀랄만한 특성의 하나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힘이다.”

눈은 기회를 만들기도 하고 위기를 만들기도 하지요. 윈스턴 처칠은 “비관론자는 매번 기회가 찾아와도 고난을 본다. 낙관론자는 매번 고난이 찾아와도 기회를 본 다”

익숙한 편리함에 갇히면 비상의 날개를 달지 못합니다. 좋은 눈은 막힌 담을 열린 문으로 보는 설레임의 시선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는 “1991년 이래 25년 동안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외벽을 장식해온 ‘광화문 글 판’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구詩句”라고 소개되었다.

시골 출신들은 키가 작은 풀꽃, 중간키 풀꽃, 아이들끼리 술래잡기 할 정도로 키가 큰 풀꽃들을 알고 있다. 나는 이 풀꽃들이 아픈 줄도 모르고 낫으로 베어서 토끼도 주고 염소도 주었다. 어떤 때는 아버지께 야단맞고 기분이 울적할 때는 풀꽃들을 발로 차고 한줌 뜯어 공중에 날리기도 했다. 나는 풀꽃을 예쁘게 본 기억이 없다.

자세히 보지도 않고 오래 보지도 않았다.

눈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를 결정하는 ‘관계의 틀’입니다.

‘자세히 보는 눈이 예쁜 눈’이라고 합니다.


‘오래 보는 눈을 사랑하는 눈’이라고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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