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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Oct 02. 2018

쉽게 어쩔 수 없는 삶이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진행했던,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일대의 부동산 매입 계획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당시 디즈니 월드 주변에 회려한 외양을 가진 모텔들이 우후죽순으로 지어졌는데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저소득층 홈리스들이 매주 방세를 내며 모텔에 장기 투숙하는 일들이 생겼고, 이러한 상황을 부르는 말로도 사용되는 모양이다. 미국에는 이렇게 집이 없는 빈곤층이 모텔같은 임시 주거 공간에 장기 투숙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아주 버릇없는 꼬마 녀석들을 보여준다. 처음 본 차에 침을 뱉기 시작하더니 그런 아이들을 나무라는 어른들에게 말대꾸도 장난이 아니다. 이 동네 모텔에 머물고 있는, 무니를 대장으로 하는 요 꼬마들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끝도 없이 지독한 말썽들을 피워댔다.

무니의 엄마도 가관이다. 장기 투숙하고 있는 모텔 방 안에서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담배를 손에서 놓을 줄 모르고, 제대로 된 일을 찾지 못해 길거리나 주변 좋은 리조트의 투숙객을 상대로 강매에 가까운 향수 판매를 하고 다녔다.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자기의 분을 이기지 못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한때는 친구였던 이웃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 곁에서 방치된 채로 자라는 무니. 대책없는 말괄량이인 것만 같은 이 아이는 사실 어른들이 울려는 표정을 바로 알아볼 정도로 이미 너무 커 있었다. 마지막까지 철 모르는 말썽꾸러기인냥 살고 싶었겠지만 세상은 이들을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깨닫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과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그런 마음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몰랐던 이 아이. 달리고 달려서 친구 젠시의 얼굴을 본 뒤에야 제대로 설명도 못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표현할 줄 몰랐던 것은 무니의 엄마 핼리도 마찬가지였을거다. 이런것 따위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늘 더 크게 소리를 질렀고, 더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다. 딸 무니를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곤 빗속에서 함께 뛰어놀고, 근사한 리조트 부페에 몰래 들어가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엄마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모녀는 함께 있을 때가 행복한 모양이다.



가끔은 무지개가 뜨고, 가끔은 밤하늘에 불꽃이 수놓아졌지만 그건 이들에게 너무 멀리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무니가 좋아하는 '쓰러졌는데도 자라는 나무'에 걸터 앉아 배급받은 식빵에 달콤한 잼을 잔뜩 발라 먹는 것 정도.

신비로운 보랏빛의 모텔, 맑고 청량한 하늘과 초록이 우거진 벌판. 영화 속의 풍경은 마치 디즈니의 만화 영화 속 배경처럼 평화롭지만 이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이 낡은 모텔에 투숙하는 모녀의 이야기를 조용히 쫓아가는 영화는 마지막까지도 신통한 해결책을 내어주지 않는다. 늘 (말 그대로 '영화와도' 같은) 극적인 해결이나 구원의 해피앤딩이라는 결말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그래서 더 먹먹하고 긴여운을 남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젠시는 울고 있는 무니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가까이에 있지만 한번도 갈 수 없었던 디즈니 랜드다. 그 도망은 현실의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꼬마들은 쉬지 않고 달린다. 영화에서 한 번도 비춰주지 않았던 그곳, 꿈과 환상의 세계, 마법의 성이 있는 디즈니 랜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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