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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May 26. 2019

붉은 점과 붉은 화살표 없이

영화 <김군>


영화는 개인의 존엄성 위로 그어진 지만원과 그 무리의 빨간 화살표를 쫓기 시작한다. '그날 광주의 그들은 정말로 북한에서 내려온 광수인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한국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던 프레임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피 흘리며 죽어간 사람들이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건너편에는 북한군 600명이 내려와 폭동을 선동했다고 주장하는 무리가 있다.


한국사회는 오래도록 그래 왔듯이 피해자에게 자신을 증명하기를 요구해왔고, 피해자들은 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자신이 피해자인지 증명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한 명 한 명의 광주 시민들이 이미 자체로 답으로써 존재하고 있지만,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끊임없이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그 답을 채웠다. 법의 심판도,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증명도 그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빈약한 주장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는 꽤나 치밀하고 섬세하다. 성실하게 80년 광주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때의 기억을 묻고 '김군'의 정체를 추적한다.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정적이다. 쉽게 열리지 않는 입술, 깊은 한숨이 만들어내는 정적. 살아남은 자들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에 괴로워하고,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날에 대해, 김군에 대해, 그리고 남아있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 과정에서 아픔을 느끼는 것은 동료를 잃고 상처 입은 몸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이 지난한 싸움에서 어떻게든 진실에 힘을 더하고 싶어 또다시 그들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야 하는 자들과 그것을 목도하는 우리의 몫이다.


치유의 시작은 진실이다.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이 있고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 그것이 겨우 시작일 것이다. 80년 5.18 이후 39년.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그날의 진실과 치유에 다가서는 일은 멀게만 느껴진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지금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상처를 헤집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아프지만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는 카메라 앞에 서며, 누군가는 영화관을 찾았다.


진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만, 불행히도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던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영화는 이제라도, 진실을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는 걸음걸음을 위해 함께 발을 내딛는다. 어떻든 살아남았기에 39년을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지켜온 그들에게 이제라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둠은 길었고, 모든 도시가 그러하듯, 광주 역시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그곳에 존재했던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며 우리와 똑같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는 곳이다. 영화의 마지막, 해가 뜨기 전 어두운 새벽에 광주 도청에 문이 열린다. 다시 찾아올 아침의 그곳은 무언가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밝은 햇살이 드리우길 바라는 것은 영화와 관객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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