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다섯 명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이제 배운 지 6개월 미만의 아이들. 자기 몸 하나 겨우 가눌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다.
감독님의 시범대로 레일을 따라 줄지어 동작을 따라 하는 아이들. 잘 나간다 싶더니 한 아이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에 질세라 뒤따라 오던 아이들 줄줄이 스텝이 엉키기 시작한다. 불안 불안하다 싶던 순간, 먼저 출발한 아이와 뒤따르던 아이가 기어코 서로 부딪힌다. 줄지어 오던 아이들은 그 둘을 피하려다 서로 밀치고 넘어지더니 일순간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서로를 깔고 눕는다.
"밀지 마! 아프잖아!"
큰 소리가 날만도 한데 화를 내기는커녕 아이들은 서둘러 일어나 다시 자기 자리를 찾기 바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감독님의 지시에 따라 다시 레일을 돌아 무사히 출발점으로 향한다.
어린아이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밀치고, 부딪히고 넘어졌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감독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Just Hockey"
그렇다. 우리는 누구도 서로를 다치게 할 의도가 없었다. 이건 그저 하키일 뿐 운동일뿐이다.
아이스하키는 원래 서로 밀치고, 부딪히면서 하는 게임이다.
북미 아이스하키의 경우 '아이스하키 본 경기보다 싸움 구경이 더 재미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기 중 선수들끼리 싸우는 일이 흔하다. 이런 싸움을 용인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아이스하키는 운동 자체가 매우 격렬하고, 경기 중 선수들 간의 신체 접촉도 강하다 보니 서로 감정이 상하는 플레이가 흔하다. 그런데 스케이트 날, 스틱, 헬멧, 패드, 퍽 등 온갖 흉기가 될 만한 장비를 가지고 경기를 하다 보니 선수들이 이성을 잃고 싸울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때문에 일종의 안정 장치로서 가벼운 싸움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정당한 룰로써 싸움을 인정하는 대신 어떤 무기도 사용할 수 없으며 오로지 주먹으로만 싸우도록 정한 것. 의외로 관중들의 호응이 좋아서 북미에서는 경기 중 싸움을 용인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고 한다.
올림픽 등의 국제 경기에서도 종종 싸움이 일어나곤 하는데 특히 라이벌 경기, 선수들의 기선제압을 위해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팬서비스 차원에서 싸움을 일부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종종 아이의 폭력성, 공격성에 당황하곤 한다. 특히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경우, 이해하기 힘든 거친 놀이를 하거나 총, 칼을 든 채 싸움놀이를 격렬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혹시 우리 아이가 폭력적으로 크는 게 아닐까? 내심 걱정도 된다.
공격성은 인간이 꼭 갖추어야 하고, 발달시켜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오은영 박사의 저서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에서는 공격성이란 인간이 꼭 갖추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원시인류 때부터 싸우고 맞서는 입장이었던 남자가 여자에 비해 훨씬 더 공격성이 발달한 면도 있다고 한다. 공격성을 잘 발달시키지 못하면 우리가 우려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공격적인 사람이 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어 건강한 공격성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놀이 중에 보이는 발산적인 공격성은 수용해주세요.
또 다른 육아서 <아이 마음에 상처 주지 않는 습관>에서는 건강한 공격성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놀이 중에 보이는 공격성은 수용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공격성은 본능이고, 이를 건강하게 풀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놀이에서만큼은 아이의 타고난 공격성을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수용해주는 것이 건강한 공격성을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안전한 환경이나 놀이에서조차 공격성을 발산하지 못하면 일상에서 오히려 잘못된 공격성이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에서 아이와 함께 매번 싸움놀이를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난감 총, 칼을 들고 죽은 척 열심히 연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그러니 엄마는 남자아이가 타고난 공격성을 건강하게 해소할 창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우리 아들에게 그 창구는 '아이스하키'다.
링크 안에서 친구들과 부딪히고, 밀치고, 넘어지고, 넘어트리며 건강하게 공격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빙판 위에서는 그것이 반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룰이니까. 혹여나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를 밀치고 넘어트렸다고 해도 그래서 우리 아이가 울고 있다고 해도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서운해하거나 속상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이곳의 규칙이니까.
이것은 "Just Hockey"일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