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 가장 두려웠던 일

by 책봄

"00씨가 PTT는 잘 만들잖아. 부탁 좀 해."

"00씨가 와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 돼?"

"선배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


나는 철썩같이 믿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거라고. 미련했다. 주말에도 쉼없이 전화가 울렸고, 나를 찾는 이들이 많았고,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이 해도 늘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도대체 이 회사는 내가 없으면 돌아가기는 하는 걸까 생각했다. 만삭까지 출장을 다니고 주말근무를 했던 것도‘내가 아니면 누가 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육아휴직 중 가장 두려웠던 일은 더 이상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휴직은 나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다. 회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 전까지 일은 곧 내 삶이었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곧 나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일이라고 믿었다. 남들 보다 많이 일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내면 나도 남들과 다르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아니어도 그럭저럭 운영되는 회사,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직장 동료와 상사들. 어제까지 나를 괴롭히던 동료는 휴직을 하는 순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다. 출근할 때 해결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던 그 일이 휴직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니 더 이상 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동안 일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 나를 괴롭히던 인간관계 그 모든 것은 회사 문을 나오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직원은 똘똘한 신입 인턴사원이었다. 어린 친구에게 인수인계를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경험도 없는 어린 애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귀찮게 자꾸 전화하면 어떻게 하지?’


내 생각은 건방졌다. 나 없이도 회사는 잘만 굴러갔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질문을 하는 전화가 오기도 했지만 한 달쯤 지나자 더 이상 전화도 오지 않았다. 회사에 출산 소식을 알렸을 때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지만 메시지를 받으며 마음 한구석이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일은 사실 경험 없는 신입 인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인턴사원 입장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나만의 착각 속에 빠져 지난 몇 년을 그 일에 온갖 열정을 쏟아부은 것이 허무했다. 그맘 때쯤 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 진짜 내가 아니면 안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되려 고마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스트레스를 겪고 힘들어하면서도 일을 놓지 못했던걸까? 돈 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긴 한걸까? 처음으로 직장생활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의문을 간직한 채로 시간은 흘러 약속한 1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를 우주의 전부로 믿는 한 아이가 있었다. 돌을 앞둔 아이는 유난히 엄마를 좋아했다. 아빠, 할머니의 손길을 모두 거부하고 오로지 엄마만을 바라보는 아이. 이 아이를 떼어놓는 것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과 나는 주말부부였다. 그 말은 평일에는 독박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평일에는 친정엄마 집에서 함께 지내며 낮에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이었다. 주말에는 신혼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하고 월요일이면 다시 친정집으로 가는 식으로 말이다. 친정엄마는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육아파트너였다. 나와 동생을 훌륭하게 키웠으니 내 아이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그동안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회사를 그만 둔 수많은 여직원들의 사연이 떠올랐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선배 워킹맘들의 모습도. 평일에는 아예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선배, 시댁 바로 옆 동에 아파트를 구한 선배, 친정엄마가 집에 들어와 함께 사는 선배 등. 아파트 공지란에 종종 붙어있는 도우미를 구하는 구인 공고도 눈에 띄었다. 가끔 아무도 몰래 휴가를 쓰고 혼자 바람을 쐬다 들어간다는 워킹맘 선배의 마음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 꿈꾸던 멋진 커리어우먼. 일과 육아를 모두 완벽히 해내는 워킹맘. 그건 어쩌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일을 마주하고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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