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 돌쟁이 아이를 맡기고 회사로 복귀하던 첫 날.
출근길 만원버스에서 생전 처음 미소를 지었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아이와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한가롭게만 느껴졌다. 점심시간에 온전히 밥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밥을 끝까지 먹을 동안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게다가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여유까지 누렸다. 감동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만큼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을 하며 짬이 날 때마다 아이가 눈에 밟혔지만 할수만 있다면 계속 일을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출근한다고 새로 산 옷도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살이 너무 찐 탓에 전에 입던 출근복을 하나도 입을 수 없어 부랴부랴 구입한 옷이다. 늘어진 면티에 츄리닝 바지와 한몸이 되었던 내가 다시 새하얀 블라우스와 정장바지를 입고 있으니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거래처에 전화를 돌리고 그동안 진행된 일을 공유받으며 다시금 설레였다. 임신으로 본의 아니게 가십의 주인공이 되어 힘들었던 지난 날은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승진에서 밀려 눈물흘리던 나도 없었다. 오로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아이를 돌보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이 기뻤다. 그렇게 벅찬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가보니 친정엄마는 아이를 등에 업고 딸에게 줄 저녁식사를 차리고 계셨다.
“엄마, 저녁을 내가 차려먹어도 되는데 이런건 안해도 돼.”
“늦게와서 애도 있는데 너가 뭘 어떻게 차려먹어. 아무말 말고 그냥 먹어.”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척 밥을 먹었다. 계속 일하고 싶었다. 친정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말이다.
출근 3일 만에 친정엄마가 다치셨다. 자주 가는 마트 주차장에서 넘어지셨다고 했다. 관절이 안 좋았던 친정엄마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남편이 부랴부랴 휴가를 내고 시댁에서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3일이 주어졌다. 3일 안에 아이를 돌봐줄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도우미를 쓰고 싶지 않았다. 돌쟁이를 기관에 보내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해있는 친정엄마를 붙잡을 수도 없었고, 시댁에서도 아이를 봐주기 어렵다고 하셨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니 3개월을 줄테니 친정엄마가 회복되시는대로 다시 출근하라고 했다. 고마운 마음과 달리 첫 출근을 하던 날, 엄마가 차려준 저녁밥상을 먹던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육아휴직으로 쉬고 있을 때, 내가 아니어도 잘만 돌아가던 회사를 보며 느꼈던 섭섭함도 생각났다. 무엇보다 아침마다 떨어지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의 모습이 가장 눈에 선했다.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팀장님과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상사들이 차례로 불러 한마디씩 했다.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보다 더 뜨거운 반응이었다. 상급자와의 최종 면담을 마친 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파일을 열고 업무인수인계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복귀한지 3일만에 하는 퇴사였으므로 일을 대신하던 인턴사원을 정식 고용하는 것으로 모든 일은 비교적 쉽게 정리가 되었다. 비난의 말들이 쏟아졌다. 이제야 일 좀 편하게 하나 했더니 자기 혼자 챙길 것 다 챙기고 떠나는거 아니냐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말은 아꼈지만 눈빛으로 모든걸 말해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여자들은 이래서 안돼'라는 말에 내가 졌다는 패배감이었다.
송별회를 기회 삼은 회식을 조용히 거절하고 마지막으로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문을 나오는데 믿고 따르던 팀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세웠다.
“00씨, 우리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ADHD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어. 가끔 어릴 때 내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았다면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이가 복이 많다고 생각해. 회사 일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어. 힘내.”
그렇게 요란했던 출산과 휴직 그리고 퇴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