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내가 퇴사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사방팔방 소문이 났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거래처 사람들, 친척 하물며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에게도 퇴사 소식을 전해야 했다. 한가한 낮 시간에 아이를 안고 동네를 산책하거나 놀이터, 키즈카페 같은 곳에 가면 아이와 단둘이 나온 나는 곧잘 표적이 되곤 했다. 길거리 학습지 영업사원, 손자를 돌봐주시는 할머니, 좀 더 큰 아이를 키우는 또래 엄마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대부분 시작은 이렇다.
“아이가 몇 개월 되었어요?”
친절하게 답하고 자연스럽게 몇 마디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종종 의도치 않게 상처되는 말들을 듣곤 했는데 크게 세가지 유형이다.
첫째, 다산장려형
이 분들은 다산에 관심이 많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을 걱정하며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 큰 일이라고 둘째, 셋째를 권유하는 유형이다. 특히 내가 전업주부라고 말하면 반색을 하신다. 키울 때 같이 키워야 한다며 어차피 일도 안하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이참에 둘째를 낳아 같이 키우라고 조언하신다. 이분들에게 눈에 쌍심지 켜고 외동으로 키우는 이유를 늘어놓아봤자 본전도 못 찾는다. 그냥 ‘네, 알겠습니다’하고 무시하는 것이 가장 빨리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 참견형
가장 기가 빨리는 유형이다. 전업주부라고 말하는 순간 이것저것 참견하기 시작한다. 아주 사적인 것들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잘 도와주냐는 이야기부터 주말부부라고 설명하면 일도 안하면서 왜 떨어져 사느냐고 당장 지방으로 이사를 하라고 참견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나를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교회나 이단으로 전도를 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셋째, 신세한탄형
주로 손자, 손녀를 돌보거나 하원도우미를 하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많은 유형이다. 이 분들은 일단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본다고 하면 칭찬하신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바르게 자란다며 잘했다고 다독이시고는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신다. 보통은 “우리 딸년은~”하고 시작하거나 “우리 며느리는~”하면서 시작된다. 본인의 손자, 손녀가 아닌 다른 집 아이를 돌보시는 경우에는 좀 더 객관적이신데 “엄마가 없으니까~”하는 식으로 본인이 돌보는 아이들 흉을 보신다.
이 밖에 상처가 되는 대표적인 말로는 바로 돈과 관련한 공격이 있다. 주로 학습지나 전집 영업사원에게서 자주 듣게 되는 말로 “아빠가 아이를 위해서 이 정도도 못 해주겠어요? 그냥 엄마가 결정하세요!”류의 말이 있다. 영업사원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거나 자식을 키워봤을텐데 부부싸움의 소지가 큰 그런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신뢰감이 떨어진다. 수많은 말 중에 가장 먼저 걸러 들어야 할 말이다.
엄마들이라면 모두 공감한다. 배가 불러오는 순간부터 우리는 낯선 사람들의 질문에 자주 시달려왔다.“몇 개월이에요?”로 시작해서 뱃 속 아이의 성별을 묻는 질문, 첫째인지 둘째인지 형제 관계를 묻는 질문 등 엘리베이터에서 대중교통에서 식당에서 수시로 듣곤 했다. 아이를 낳은 후도 비슷하다. 놀이터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그런 식으로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 시작된 인연에서 상처를 받는 일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점점 더 관계에 소극적으로 변해간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고 말을 섞지 않으려고 피하기도 한다. 그리고 외로워진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나은 것일까, 타인을 견디는 것이 할만한 일일까? 오늘도 숙제로 남는다.